[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55)]초근목피의 그 시절
아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길/ 주린 배 잡고/ 물 한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의/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요즘 트롯 가요 ‘보릿고개’가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됐다. 가수 진성이 가사를 쓰고 부른 이 가요는 소년 가수 정동원이 미스터트롯 프로그램에서 부르면서 더욱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이제 갓 중학교에 들어간 소년이 보릿고개를 어찌 알려냐마는 그의 목소리에 담겨져 나오는 노래는 가히 절창이다. 마치 보릿고개를 직접 겪은 듯한 정동원의 노래는 전 국민들의 지난했던 과거를 새삼 일깨워 준다.
보릿고개는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음력 4~5월)을 일컫는다. 한자로는 춘궁기(春窮期), 또는 맥령기(麥嶺期)라고도 한다. 1950~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들은 매년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아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로 시작되는 진성의 노래는 그 때 그 시절의 배고픔을 절실하게 대변해 준다.
이 시기에는 나무껍질이나 풀뿌리를 먹으며 연명하다 보니 소화가 잘 안돼 볼일을 볼 때 항문이 찢어져 피가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나무껍질은 주로 소나무의 연한 속껍질을 벗겨 삶거나 하여 부드럽게 만들어 먹었고, 진흙은 백토라고 하는 입자가 매우 고운 흙을 물에 개어 가라앉은 부분을 쪄 먹었다. 나무껍질이나 흙 모두 인간이 소화할 수 없는 성분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탈이 나고 심각한 변비를 일으켰다. 그래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도 생겼다. 초근목피(草根木皮)는 한마디로 보릿고개를 넘어가는 대명사로 쓰였다.
지난 5일은 24절기 중 아홉 번째 절기인 망종(芒種)이었다. 芒(망)자는 보리나 벼 따위의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뜻하는데, 망종을 전후해 보리를 베고 벼를 심는다. 우리 속담에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말이 있다. 망종 전에 논보리를 모두 베야 그 논에 모를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릿고개 밑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 굶으며 넘었다/ 얼마나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 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보릿고개’ 일부(황금찬)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