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59)]소서(小暑) 그리고 원두막

2020-07-06     이재명 기자

오늘은 ‘작은 더위’라고 일컬어지는 소서(小暑)다. 소서는 보통 장마 기간 중에 있는데, 장마가 끝나는 무렵이면 염소 뿔도 녹는다는 대서(大暑)가 기다리고 있다. 소서 무렵이면 모내기를 끝낸 모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농부들은 논둑과 밭두렁의 풀을 베어 퇴비를 장만하기도 했다. 오이, 애호박, 감자, 자두, 토마토, 수박, 참외 등 먹을 거리가 가장 풍성할 때다.

소서 전후가 되면 낮 기온이 30℃ 근처까지 올라간다. 아이들은 학교갔다 오는 도중에 다슬기 잡는데 몰입하기도 하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비를 피하기 위해 근처 원두막에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은근쓸쩍 수박밭에 내려가 아직 설익은 수박을 훔치기도 했다. 50대 이상의 원두막은 이렇듯 아득한 추억의 보고(寶庫)다.

원두막(園頭幕)은 원두밭에 열린 원두를 지키기 위해 지어놓은 높직한 막(幕)을 말한다. ‘원두(園頭)’는 원래 참외·오이·수박·호박·가지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원두막은 기둥 4개를 세운 뒤 이엉지붕을 만들고 그 기둥 중간 쯤에 판자나 통나무로 평평한 바닥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사각형 방바닥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이용해야 했다. 원두막의 본래 용도는 수박밭이나 참외밭 등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가급적 높이 지었다.

‘서리’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떼를 지어 남의 과일·곡식·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이라고 해 놓았다. 원두막을 높이 세울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동네 악동들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원두막이 꼭 감시초소 역할만 하는 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고 원두막 아래쪽은 청춘남녀의 데이트 장소이기도 했다. 소나기가 쏟아지면 잠시 피하는 곳으로는 최고의 장소이기도 했다.

경기 양평군 소나기마을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속 소년과 소녀가 처음 만난 개울이 흐르고, 둘이 소나기를 피해 들어갔던 원두막이 그림처럼 서 있다. 마을 안 광장에선 매일 오후에 3번씩 소나기가 쏟아진다. 관광객들은 주인공 소년, 소녀처럼 비를 맞다 수숫단 속으로 몸을 피하는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도 있다. ‘소나기’의 마지막 대사를 읽으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두 변변히 못 써봤다더군. 지금 같애서는 윤초시네두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루 입혀서 묻어달라구….”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