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언어의 품격
영향력 큰 언론이나 공직자 등
말은 주체에 따라 가치 달라져
가짜뉴스·저속한 댓글 걸러야
언론과 공직자의 언행은 품격이 있어야 한다.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의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에 대한 선고공판이 중계방송되었다. 어려운 법리라 이해가 쉽지 않겠지만 상황에 따라 언어의 값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법원의 판결에서 보듯이 선거토론에서의 언어의 사용에 대한 판단이 갈릴 수 있다. 대법관 다수의견에 따라 사실의 공표는 적극적으로 한 것만이 대상이라는 취지로 유죄였던 항소심은 파기환송되었다. 사법소극주의 원칙상 선거는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영역이므로 법원의 판단범위에서는 자제해야 한다는 점도 작동한 것 같다.
한편, 법원이 국회에서 입법한 법률을 해석할 때에는 문장의 의미와 그 입법취지를 살펴서 충실히 해야 한다는 소수의견도 경청할 만하다. 선거토론에 있어 유권자에게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에 착오를 일으키게 하거나 또는 판단에 부당한 영향을 미쳐서는 아니된다. 개인적인 법익의 침해인 사기죄에 있어서는 기망이 명시적 기망행위 외에도 묵시적 또는 부작위적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공익적인 선거법에 있어서 동일한 잣대를 들이댈지는 법철학적인 문제이다. 대법원의 논리정연한 글도 글이지만 그 고민에 공감이 간다. 공직선거법을 읽어보면 온통 금지하는 것이 너무 많다.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하게 하는 법이 맞는지 의문이다. 과거 혼탁했던 선거운동의 반성으로 각종의 규제를 해 두었을 것이라 짐작은 되지만, 국민의 정치적인 자유를 너무 과도하게 속박한 것은 아닌지.
말은 그 주체에 따라 가치의 평가가 달라진다. 검찰과 법관은 판결문이나 공소장의 내용으로만 말하는 것이 불문율이었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은 그 경향이 바뀌었다. 사법기관에서 개별적사건에 대한 내부적인 의견이 공개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공익적으로 중요한 직무를 수행하면서 외부에 대하여 특정한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필자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는 장치인 3권 분립이라는 중요한 가치구조가 붕괴되는 것을 우려한다. 선거나 임명에 의하여 사법부나 준사법기관에 일하다가 입법부나 행정부에 이동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들의 인적교류를 막을 장치는 아직은 없다. 그럼 그 결정은 전적으로 국민선택의 문제이다. 말의 내용도 중요하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일반적 지휘권행사와 관련하여 논란이 된 사건이 진행중이다. 많은 사람들은 언론사와 검찰고위간부간의 대화에 주목하고 있다. 언론과 준사법기관간의 대화가 녹취록 형태로 공개되고 있다. 검찰과 법원에 수없이 많은 녹취록이 제출된다. 감청이나 도청은 처벌받는다. 하지만 대화자간 녹음은 위법한 것이 아니다.
대화의 방법과 그 격조에 따라서도 말은 가치를 달리한다. 많은 시민들이 포털에서 뉴스를 검색하고 댓글을 단다. 신문과 방송에 기대어 뉴스를 소비한 것은 이미 과거이다. 유투브를 포함한 다양한 SNS를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 이들 수단을 통하면 여과장치 없이 소비자에게 도달한다. 도달뿐 아니라 전파까지 하니 소비자인지 생산자인지도 모를 때도 많다. 나름의 편리성이 있고 또 현대적 추세이기도 하다. 기성언론에 대한 불신도 한 몫을 했으리라. 오히려 기성언론도 이에 편승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공급은 소비를 따라가는 것이 당연지사.
문제는 가짜뉴스와 저속한 댓글이 횡행하는 점이다. 자기편이면 상대편에 대한 막말을 용인해도 되는가.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일반적 언어교육을 하는 효과가 감쇄하고 있다. 고결하고 격에 맞는 언어까지는 아니라도 욕설이 난무하는 댓글. 올바른 언행에 대한 기대는 공염불인가. 어문과 문학의 연구가 돈벌이 공부에 완전히 밀려서 그런 것인가. 상황, 주체, 내용은 차치하고 표현의 저속함이라도 면해 보자. 고운 우리말을 지키는 것이 독립운동인 시절이 있었다. 장충공원에 있는 외솔 최현배선생기념비가 눈에 삼삼하다.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