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8)]자연의 인내력과 한계

지구의 회복력 이미 무너지고 있지만현실적인 심각성 느끼지 못하는 상황
더 이상 자연의 인내력 시험해선 안돼

2020-08-04     경상일보

지금은 전문가의 시대다. 전문가의 조언이 포함되지 않은 사고나 행동은 그리 믿을 만하지 못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자기 몸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세계 경제의 미래를 예측하고 걱정하는 일까지 모든 영역에서 전문가의 조언을 따라서 해석하고 행동한다. TV를 켜면 어떤 방식으로 요리를 해야 하며 어떻게 운동을 하고 어디로 여행하는 것이 좋은 지에 대해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나와서 조언을 한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훈련하면서 우리의 몸이 경이적으로 바뀌는 모습도 사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고 부모의 걱정거리인 떼쟁이 아이도 전문가의 처방에 따라 거짓말 같이 편안해지는 과정을 관찰할 수도 있다. 심지어 집에서 기르는 난폭한 개도 전문가와 만나면 몇 시간 안에 온순한 반려동물로 변하는 것을 보면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에 경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전문가의 말을 믿지 않거나 애써 경시하는 영역이 있다. 하늘과 땅과 바다에 관한 전문가의 분석과 예측은 그 말이 아무리 절박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1900여 편의 국내외 전문가의 논문과 보고서를 분석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 의하면 수십 년 안에 우리나라에서는 사과재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귤은 제주도가 아니라 강원도에서 생산될 것이라고도 한다. 다른 모든 작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홍수가 빈번하고 폭염으로 거리를 걸어 다니기 어려운 날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경고도 포함되어 있다. 재앙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재앙의 도래가 현실적인 심각성을 얻지 못하고 아직도 방송캠페인 수준의 경고에 머물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기의 생활이 불편해 지는 만큼만 환경을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기상이변도 개인적인 불편함과 연결되지 않으면 견딜만한 그 사건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홍수로 이웃 마을이 물에 잠기고 사람이 떠내려가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안이한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리라. 현대 문명의 편리함이 위기의 징후를 온전히 인지하는 더듬이를 인간에게서 퇴화시켜 버린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더러는 우리가 당면한 이러한 현실적인 위기를 인정하기보다는 지구의 회복력에 기대를 걸고 낙관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많은 탄소를 배출해도 지구의 하늘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유지할 것이며 아무리 많은 플라스틱을 바다에 버린다 해도 바다는 결코 복원력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온도가 높아진다는 소식에도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변화에 불과해. 기온은 원래 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거야. 신경 쓸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구의 대기는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얇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는 대기의 기본 화합물 농도를 이미 바꾸어 가고 있다. 흔히 말하는 온실 가스가 태양의 복사열을 대기 밖으로 배출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소설과 그레고리펙의 영화, 그리고 조용필의 노래로 유명한 ‘킬리만자로의 눈’은 이 온실가스로 이미 사라져 버렸다. 올 여름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을 위협하는 홍수도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시작된 대기의 온도 변화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의 인내력을 시험하지 않아야 한다. “예전에는 세계의 종말에 대한 판결로서 우리를 위협하였던 것이 종교였다. 오늘날에는 바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지구 자체가 이 날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한때 훌륭한 창조자였던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몰락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탐욕을 억제해야 한다고 경고하는 것은 바로 말없는 피조물들의 고발이다.” 독일 철학자 한스 요나스가 죽기 전에 한 말이다.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