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문화담론-씨네울산]영화감상으로 주변 어르신 돌아보는 계기 되길

(7) ‘노인의 날’을 앞두고

2019-09-24     홍영진 기자

노인 위한 사회적 제도·인식 미흡
치매 치료에 대한 필요성 높아져
영화 ‘소중한 사람’ 속 치매 노인
가족의 노력과 사회 시스템 통해
노년의 새로운 인생과 안정 찾아


딱 일주일 뒤면 제23회 노인의 날(10월2일)이다. 시대를 담는 그릇, 영화를 만들고 분석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이번 칼럼은 오랫동안 관심가져 온 노인과 사회문제에 관한 짧은 글을 써보려 한다.

인간에게 중요한 다섯 가지 사회적 기초욕구 키워드는 보육, 교육, 취업, 주택, 그리고 노후이다. 60세 환갑에 관한 인식을 비추어보면, 기술과 의학의 발달한 요즘은 그 연령대를 72세, 84세로 조정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노인은 젊어졌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는 아직도 부족함이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노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책은 의료서비스이고, 가장 두려운 질병 중의 하나가 치매이다. 그런 점에서 치매 노인과 가족 간의 화해를 다룬 영화 <소중한 사람>(2002, 일본)은 주목할 만하다.

2002년에 제작되고 2011년에 국내 개봉한 이 영화는 원제가 ‘오리우메’로 ‘꺾인 매화’라는 뜻이다. 영화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에 의해 진행된다.

시모가 아들네로 들어오면서 치매에 걸리는데, 발병 원인은 평생을 살아온 익숙한 동네에서 생면부지 도시의 아들네로 옮겨가며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극중 치매 초기증상은 시간을 역행하는 지남력장애, 품위를 유지할 수 없는 행동장애, 언어사용에 문제가 있는 인지장애, 우울하고 불안정한 정서장애 등 크게 네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젊은 시절 남편 없이 홀로 바느질로 돈벌이했던 때의 행동을 반복한다. 유년기 친모로부터 버림받은 그녀는 자식을 위해 악착같이 살았던 그 시절로 퇴행하여 집안의 침대시트와 커튼 등을 마구 잘라 행주를 만들어댄다. 둘째, 언제나 단아했던 머리칼은 수세미처럼 헝클어지고, 잠자리에 오줌을 싼다. 식탐을 부리면서 식탁 위의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먹던 빵을 서랍에 숨긴다. 셋째, 편지를 쓸 때 쉬운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다. 넷째, 베개에 숨겨둔 돈을 며느리가 훔쳤다고 의심하며 화를 내고, 걸핏하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하소연하며 운다. 가족 모두 이런 시모를 노환에 의한 추태라고 치부하다가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자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흔히 치매를 언행이 거칠어지는 ‘나쁜 치매’와 반대 성향의 ‘착한 치매’로 구분하는데, 극중 시모는 ‘나쁜 치매‘로 발전해나가면서 유난히 며느리를 구박한다. 도시락을 집어던지고, 때리고, 화분을 망가뜨린다. 말로 며느리를 상처 입히고, 이 세상의 모든 비극은 자신에게 왔으며, 며느리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게 하는 원흉이라고 비난한다.

우여곡절 끝에 며느리가 찾은 치매치료교실의 도움으로 고부는 쌓인 감정을 쏟아내며 눈물을 흘리고, 이로써 감정의 정화와 화해를 도모한다. 시모는 바느질하던 손재주 덕분인지 그림에 집중하면서 ‘착한 치매’로 변화해간다. 결국 그녀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완전한 타인이 돼버리지만, 편안한 표정으로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극중에서 매화는 가지를 꺾어도 뿌리가 자란다는 말이 나온다. 시모는 치매로 꺾인 나무가 됐지만 가족의 노력과 사회의 시스템으로 새롭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아름다운 매화가 되었다. 며느리는 한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해답을 찾았고, 제도화된 사회복지서비스를 통해 환자 본인과 주변 모두가 편안할 수 있게 되었다.

노인의 날을 앞두고, 오늘의 나와 우리 동네, 우리 사는 울산을 만들어 온 주변 어르신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공연예술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