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마스크의 이타주의

2020-08-06     경상일보

팬데믹(Pandemic)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팬데믹은 그리스어로 pan은 모든, demic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2020년 8월5일 기준 전 세계 218개국에서 발병해 이미 수천만 명의 사람이 감염되었고 70만 명 이상이 사망한 대재앙 앞에 경제력, 군사력, 과학기술 등 그동안 인류가 쌓아왔던 자본주의적 물리력은 속수무책이다. 세계 1등 국가라 자부하는 미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은 물론 중남미, 인도 등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를 가리지 않고 있다.

물론, 흑사병, 스페인 독감, 신종플루, 에볼라, 메르스까지.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감염병의 대유행 속에서도 인류는 살아남았듯, 코로나19의 창궐 속에서도 여전히 인류의 희망과 낙관은 유의미한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우리는 세계에서도 모범으로 불리는 K-방역으로 팬데믹의 공포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울산 역시 비교적 코로나 청정지역으로서 울산시와 시민 모두가 모범적으로 잘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곁에 둔 그런 불안감이 늘 함께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세계의 역사는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뉘어질 것이라고도 하고, 코로나 이전의 시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렇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의 감염병과는 전혀 다른 숙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코로나를 재앙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변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 변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의존해 왔던 경제, 산업, 교육 등 생활의 패러다임에 대한 변화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 시기 인류의 가치와 철학에 대한 재고찰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 미국, 영국, 일본 등 부자 나라들이 아직 개발도 되지 않은 코로나19 백신을 선점했다고 한다. 이른바 백신 국수주의를 우려하게 하는 세계 강국들의 이같은 행태는 팬데믹에 저항하는 인류의 희망과 낙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필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한다고 안전할 것인가. 팬데믹 시대에 그들만 안전한 것이 최선인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가르침은 바로 우리의 운명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초연결 사회라는 말은 인터넷 사회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팬데믹 시대에서 더 실감나는 말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는 이미 연결돼 있고, 어느 한 국가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도록 인류는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에 있어 우리의 운명은 우리에게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팬데믹에 대처할 유일한 방법으로 ‘이타주의’라는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의 말이 지금의 우리에게 큰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돈과 과학기술만으로 지금의 팬데믹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과연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백신이 개발되면 감염병으로부터의 위험은 줄어들겠지만, 다시 또 팬데믹이 오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주는 또다른 숙제란 바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타주의의 승리를 믿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힘과 돈이 우선되는 이기주의만이 답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기주의만이 정답인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선 나조차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문제는 연대와 협력, 상생이다. 결코 특별하거나 비범하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은 것이다.

오늘도 나는 습관처럼 마스크를 챙기고 길을 나선다. 마스크는 내가 보호받는 동시에 내가 타인을 보호하고, 그렇게 보호받은 또다른 타인들이 결국 나를 보호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안전한 것이 우선인가, 타인이 안전한 것이 우선인가. 결국 나와 타인은 우선 순위를 두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단언컨대, 팬데믹은 다시 온다.

김미형 울산시의회 행정자치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