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장꽃분을 위하여-‘돌핀프리’와 울산의 도시 브랜드 만들기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서 돌고래 또 폐사
반생태적 돌고래수족관 폐쇄 동참 필요
‘돌핀프리’ 생태·고래도시 출발점 될 것
지난 7월22일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에서 또 한 마리의 큰돌고래가 폐사했다. 고아롱이라는 이름의 수놈 돌고래는 2009년 10월 고래생태체험관이 처음 개관할 때 일본 와카야마현 타이지에서 들여온 창단 멤버인데, 체온이 갑자기 오르더니 며칠 만에 구토증세를 보이다가 죽고 말았다. 18세로, 큰돌고래의 평균 수명이라는 40년의 절반도 살지 못한 셈이었다.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은 지금까지 총 8마리의 돌고래를 수입했으며 이들은 새끼 4마리를 출산했다. 그 중 이번에 죽은 고아롱을 포함해서 8마리가 폐사했다고 한다.
해양수산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수족관에서는 최근 10년간 돌고래 61마리 중 30마리가 다양한 원인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번 고아롱까지 포함해서 수족관 돌고래의 폐사율은 50%에 육박하는데,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의 폐사율은 그보다도 훨씬 높다.
이제 생태체험관에는 죽은 고아롱과 함께 일본에서 들여온 암컷 장꽃분, 장꽃분이 수족관에서 낳은 수컷 고장수(3살), 그리고 2012년에 수입한 암컷 장두리(11살), 2017년에 수입한 암컷 장도담(7살) 등 네 마리가 남았다. 그들도 언제 갑작스런 폐사의 운명을 맞이할지 알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살아남더라도 평생을 좁은 수족관에 갇혀 인간을 위한 쇼를 강요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돌고래는 근본적으로 수족관 사육에 적합하지 않은 동물이다. 1년 이동 거리만도 수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돌고래에게 수족관은 감옥이나 다름없다. 또 지능이 높아서 좁은 수조에 갇혀 훈련을 받는 것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한다.
돌고래 수족관이나 쇼가 반생명적인 가혹행위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고래류 전시와 돌고래 쇼는 서서히 폐지되는 추세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돌핀프리 방침에 따라 2013년에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 쇼에 이용당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냈다. 돌고래 쇼장도 이미 폐쇄했다.
국내 수족관들은 일본의 타이지라는 곳에서 돌고래를 수입한다. 이곳은 에도시대부터 돌고래를 잡아왔다는 역사성을 내세워 지금도 매년 돌고래 수천 마리를 잔인하게 포획한다. 어리고 예쁜 개체는 생포해서 훈련시킨 다음 전 세계로 수출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국제 사회의 거센 비판을 무시하고 국제포경위원회(IWC)를 탈퇴, 2019년 7월부터 대형고래에 대한 상업포경을 재개했다.
한반도에서 고래잡이 역사의 중심 무대였던 울산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일본의 사례로 고래의 포획과 식용, 인간 위주의 이용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사례이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모비딕>을 탄생시킬 정도로 미국은 19세기 중반 세계 포경산업을 주름잡았다. 그렇지만 포경기지로 명성이 자자했던 동부의 뉴베드퍼드와 낸터컷은 오늘날 고래를 학습하고 바다생태계 보존을 추구하는 시민 교육과 홍보의 근거지로 변신했다.
1912년에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연구원이었던 로이 채프먼 앤드류스가 울산 장생포를 방문한 이유는 귀신고래 때문이었다. 당시 북극에서 캘리포니아 근해로 남하하던 귀신고래들이 미국 포경선의 남획으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그는 겨울이면 태평양 서쪽 해안을 따라 울산 앞바다로 남하하는 귀신고래를 찾아 장생포를 찾았다. 당시 그가 촬영한 사진과 보고서는 울산 귀신고래에 대한 귀중한 역사 기록으로 남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울산 앞바다에서 귀신고래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연안에서는 개체 수가 2만여 마리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그간의 보호 노력이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인간의 편익만을 위해 자연을 약탈하고 동식물을 착취하는 것이 정당한지를 묻는 목소리가 드높다. 더욱이 세계사를 바꾸고 있는 코로나19, 8월에 접어들어서도 계속되는 장마와 폭우는 더 이상 그와 같은 반성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돌핀프리’는 생태문화도시, 고래문화도시로서 울산의 도시 브랜드를 만드는 출발점이다. 이제 그만 장꽃분을 가혹한 수족관에서 풀어주자.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