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손과 마음이 가는 대로

2020-08-18     경상일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기본적으로 아날로그 신호로 이루어져 있다. 아날로그 신호는 무한대로 펼쳐지는 무궁무진한 색의 다양성, 무한대 종류의 냄새, 무한대 톤의 소리, 무한대의 공간적 위치 등을 포함한다. 인간이 인지하는 모든 것과 관련한 정보는 연속적으로 뇌까지 전달되고 투과된다.

미래학자인 존 네이스비트(John Naisbitt)는 ‘하이테크-하이터치’ 원리를 통해 우리의 삶이 기술에 젖어 들면 들수록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더 많이 원하게 되고, 의학이 첨단기술 쪽으로 접어들수록 대체 치료제나 치료 방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육체가 아닌 머리로 컴퓨터에 몰두하면 할수록 여가 활동은 더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방향으로 기운다고 했다. 최근 ‘아날로그 감성’이나 ‘요즘 옛날’이라고 일컫는 ‘뉴트로(New-tro)’ 문화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추억을 소환하는 아이템들이 전시된 문화공간들, 1970~80년대 핵심 디자인과 공동작업한 제품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옛것과 새로운 문화가 접목되어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하이터치’의 독특한 이야기와 감수성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지닌 아날로그 신호를 어떻게 하면 하이터치 방식의 활동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무궁무진한 색과 형태의 아날로그 신호를 ‘손과 마음이 가는 대로’ 표현해 보고,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해 보는 활동을 통해 가능하다. 다중지능이론의 가드너 교수는 다중지능 발달을 위한 방법으로 ‘예술을 통한 창의성 교육’을 시사했다. 미술 활동은 표현의 결과물인 형식적인 ‘조형성’과 그 형식에 담긴 내용의 ‘창의성’이 중요시된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아이로 만들려면 그림을 어떻게 그리라고 강요하지 않아야 하며, 닮지 않았다고 똑같이 그리라고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풍부한 감성과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손과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표현활동은 아날로그적인 표현이어야 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 주는 동시에 결과에 집착하는 강박증을 덜어주어야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20여 년간 미술치료를 통해 펴낸 책, <그림의 힘(The power of masterpiece)>에서는 그림 감상과 표현활동은 소통과 치유를 가능케 한다고 믿고 있다.

자연풍경의 그림 한 장을 보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도 하고, 활력을 찾아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 삶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압박을 받을 때 그림은 시간과 돈의 한계를 넘어 한 차원 높은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어려서 그림책을 가까이하거나 문화 예술적 자극을 많이 받은 아이들은 표현활동에 더 자유롭다. 자연의 빛을 받으며 자연 속 활동이 풍부한 아이, 감정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과 좋은 그림이 가득한 책을 가까이한 아이, 박물관, 미술관, 체험학습, 견학 등의 경험이 많은 아이일수록 내면의 자원과 아날로그 신호는 다양해지고 풍부해진다.

여름이 무르익는 8월, 자연은 가장 좋은 캔버스이며 아날로그 신호가 풍부한 자원이다. 자연 속 아날로그 신호를 한껏 저장하고, 손과 마음이 가는 대로 표현하는 풍부한 경험이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임수현 중남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