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천상 올림픽

2020-08-25     경상일보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을 시작하기 전까지 1~2주 남짓의 기간에 축구를 정말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몸으로 하는 일을 썩 잘하지 못하는 나는 주로 벤치 신세여서 출전을 기다리며 방학하는 날도 함께 기다렸었다.

무더운 여름, 방학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시험이 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시험 이후의 학교 수업은 무의미한 시간일 테고, 매 학기 기말고사만 끝나면 반복되는 이 상황은 교사들에게도 큰 스트레스일 테다.

그래도 수년 전부터 기말고사 이후 교육과정 운영의 내실화와 관련하여 공론화가 이루어지고 교육청에서 지속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학교에서도 이의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이 기간에 ‘천상 올림픽’이라고 명명한 ‘꿈끼 탐색주간’을 운영한다.

‘천상 올림픽’은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는 시기에, 지난 학기 동안 갈고 닦은 교육 성과를 공유하고 학생 각자의 꿈과 끼 발산을 도우며, 새로운 학기를 맞아 지난 학기 동안의 학업을 반성하고 새 학업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자신의 시험 점수가 나와 있는 과목별 성적 일람표에 서명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란 참 어려운 상황에서, 특정한 시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대회와 행사들을 ‘천상 올림픽’이라는 이름 아래 묶어, 취약 시기인 학기말에 집중하여 진행함으로써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과정에 대한 학생들의 집중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들로 인해 자칫 마음 상하기 쉬운 교사가 학생들을 보다 섬세하게 지켜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올해 1학기는 코로나19를 핑계로 예년에 비해 축소·운영되기는 했지만, 각종 교과 관련 대회 위주로 진행한 초기 모습에 비해, 종이비행기 국가대표팀 초청 진로 활동 ‘We Fly, 내가 꿈꾸는 미래’, 사회적 기업인 한국미래전략연구소와 함께 한 ‘청소년 미래교육 워크숍’, 본교 전문적 학습 공동체 ‘미래수업연구소’와 학생·교사 동아리 ‘건공감리’를 중심으로 한 ‘학교 공간 혁신 워크숍’ 등의 여러 프로그램이 운영됐으며, 각종 교과 관련 대회와 4월에 미처 진행하지 못한 과학의 날 행사도 함께 운영됐다. 그리고 2학기에는 학생문화예술활동 활성화 차원에서 기타 합주에 합창을 더한 ‘천상의 하모니’, 동아리 활동 결과를 나누는 체험 부스 ‘배우다! 나누다! 스미다!’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여전할 것인가, 역전할 것인가’, 책상 한편에 낙서처럼 써두었을 법한 글귀가 종이비행기 국가대표팀과 함께 한 학급별 걸개그림에 쓰여 걸려 있다. 학생들은 글을 쓰는 그 순간만큼은 진지했을 것이고 간절했을 것이다. 학생들의 그 간절함에 이제 학교가 응답할 순서이다.

손규상 천상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