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엄벌주의를 경계한다

범죄감소 예방엔 처벌강화론 한계
형벌은 최소한 수단으로 유지하고
사회 경제적 정책·교육 대책 필요

2020-09-06     경상일보

비동의간음죄를 처벌하는 내용의 형법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고 한다.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미투운동으로 촉발돼 지난 국회에서도 제출됐던 법안이다. 비동의간음죄란 폭행 협박 등의 유형력 행사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동의없는 강제적 간음을 처벌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를 엄단하고, 성인지 감수성에 부합하는 판결을 해야 한다는 정서가 널리 퍼져 있다. 부부강간죄를 인정하는 대법원판결도 있다. 상대방의 동의없는 간음행위를 처벌하게 된다면 남녀간의 만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간통죄의 비범죄화를 빼고는 강간죄의 비친고죄로의 변경이나 강화된 양형기준 등 성범죄에 대한 처벌 범위와 강도는 계속 높아져 왔다. 특정 교통범죄의 법정형을 가중한 소위 ‘민식이법’(스쿨존사고)이나 ‘윤창호법’(음주운전사고), 안전사고 기업에 대한 엄벌화 입법 등도 진행돼 왔다. 그 동안 형법의 각종 범죄에 대한 법정형을 높이는 특별법이나 특례법 등도 계속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으로 보인다.

엄벌주의는 범죄에 대한 대증적 요법으로 대중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고 국가의 입장에서는 범죄를 다루는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범죄발생을 줄이는 근본적인 예방효과를 거두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과잉범죄화는 형사처벌 본연의 범죄억제 기능을 왜곡시킬 우려마저 있다. 사회적 유해 행위를 진압하기 위한 형벌은 최소한의 수단이 돼야 하고, 형벌보다 가벼운 법적 수단으로 목적 달성을 할 수 있을 때에는 형벌은 그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최근 서울 모 법원에서 공무집행방해사범에게 벌금 300만원의 선고유예를 판결한 사례를 보았다. 흔히 발생하는 사건으로 초범을 구공판하고 징역 8월의 구형까지 했으니 단순 폭력사건에서도 엄벌주의의 행태를 보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검찰은 항소까지 했는데 1심 법원의 선고유예는 다행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30대 초반 미혼의 항공사 기장이 애인과 둘이서 주점에서 술마시다가 과음해 큰소리로 얘기하면서 소란을 피운 일로 신고돼 출동한 경찰과 옥신각신하던중 밀치면서 한 대 때린 사안(상처도 없음)이니 애초부터 구공판 아닌 다른 처분이 가능한 사안이었다.

범죄에 대한 처벌은 질서 유지와 법치 확립에 필수적이다. 사회의 복잡화에 따른 범죄의 양적 팽창 및 질적 악화에 대응하는 방안은 1차적으로는 단호한 처벌일 것이다. 하지만 범죄를 발생시키는 환경과 조건에 대한 연구와 분석, 이를 토대로 한 사회 경제적 정책과 교육적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범죄를 줄이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 실현과 평온한 사회를 위해 보다 근본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많이 발생하는 경제범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과잉범죄화나 엄벌주의는 현대 민주국가에서보다 오히려 경찰국가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적정한 형벌의 집행과 과잉범죄화의 극복이 선진 법치사회로의 길일 것이다.

처벌의 강화보다는 교육과 인성의 함양이 사회의 안전과 구성원들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형사정책적 관점에서도 타당하다. ‘범죄와 형벌에 관한 법’이 그물망처럼 촘촘히 만들어지고 처벌이 강화된다고 하더라도 법망을 피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다면 범죄를 제압해 사회의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형벌의 효과는 반감한다. 논어에도 “정법(정치와 법률)으로 명령하고 형벌로써 기강을 세워 질서를 바로 잡으려 한다면 백성들은 그 영향에서 벗어나도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질서를 유지시켜 나간다면 부끄럼이 있어 머지 않아 그 품성과 품격으로 올바르게 된다”고 했다. ‘만들면 법이 된다’는 식의 입법만능주의나 형벌의 과잉으로 치닫는 엄벌주의 사고는 경계해야 한다. 어떤 내용으로 비동의간음죄가 입법화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