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29)]합천 청량사 삼층석탑

2020-09-10     경상일보

산길을 한참 더듬어 오른다. 가파른 산비탈, 높은 석축 위에 올라앉은 절집이 성큼 다가선다. 매화산 월류봉이 품은 청량사다. 매화산은 우뚝우뚝 솟아난 기암괴석의 모양이 천 분의 부처님 같다하여 천불산으로 불린다. 그 천불산을 병풍삼은 청량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된 유서 깊은 절이다.

법보 사찰인 근처 해인사의 명성에 가려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량사에는 통일 신라를 대표하는 보물이 여러 점 있다. 대웅전의 석조석가여래좌상, 그 돌부처님과 뜰에 선 삼층석탑과 석등이 일직선상에 나란하다. 건립 당시를 대표하는 빼어난 작품으로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9세기 초의 걸작인 돌부처님과 신라 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삼층석탑, 그리고 아름다운 석등이 고스란히 남아 아득한 시간을 이야기한다.

대웅전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마당을 내려서는데 예전과 달리 석탑이 눈에 익지 않다. 어지럽게 쨍한 햇볕 탓인가 눈을 감았다 뜨기를 몇 번하다 천천히 탑돌이를 한다. 탑과 석등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분명 석등이 석축 끝에 자리했는데. 왜? 그 이유를 설명한 곳이 아무데도 없다. 그래서 낯선 장소에 와 있는 듯 마음을 끌지 못했나보다. 그러면 어떠랴. 보물 제 266호, 수려한 삼층석탑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멀리 시원스레 뻗은 산줄기를 본다. 청량함이 확 밀려와 우매한 속세의 일을 잠시 잊는다. 석탑의 우아한 지붕돌에 어룽어룽 걸린 햇살도 위로가 된다.

적막한 산사에 스님 한 분이 약광전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아까부터 대청소를 한다. 좌복은 모두 내어 널고 향로를 비롯한 집기들을 닦더니 거미줄도 걷어 낸다. 나는 삼층석탑 앞을 떠나지 못하고 저만치 고심선원(古心禪院)을 건너다본다. 천 년 전의 부처님을 모신 곳에서 바른 삶에 눈을 뜨고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당부하며 성철스님이 내려 주신 말씀이다. 보광전을 깨끗이 청소하는 스님은 그 당부를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숲에서 매미가 뜨겁게 운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