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라떼는 말이야
부드럽고 달콤한 커피 ‘라떼’처럼
선배들의 축적된 경험·진심어린 조언
사랑으로 귀담아 듣는 문화 자리 잡길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있었던 장면이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등원도우미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 라떼가 뭐야?” 할머니는 잠시 주춤거리다가 “응, 그거 커피 같은 거야” 라고 얼버무렸다. 모르긴 해도 그 어린이는 요즘 유행어가 된 ‘라떼’에 대해 묻는 듯 했고 그 할머니는 설명하기 쉽지 않은 시사용어에 난감해 한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한국에 건너와 불통의 대명사로 둔갑한 ‘라떼‘가 그날 아침에는 쓴맛이었다.
직장상사나 인생의 선배들이 수시로 들려주고 보여주는 축적된 경험을 값진 보석과 같은 암묵지로 여겼던 우리 세대는 ‘라떼’로 조롱당할까봐 이제 말을 아끼게 되었다. 선배 혹은 형님들과의 작은 갈등을 ‘라떼’로 밀어내면 더 큰 부분에서 공존해야하는 공간까지 잠식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50년 전 ‘40대 기수론’을 주창했던 분은 후에 대통령이 되었다. 청년비례대표라는 개념도 없던 때였고, 오히려 젖비린내 난다는 비웃음까지 받았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어떤 이는 33살에 컴퓨터바이러스 백신개발회사를 창업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구었다. 중소기업벤처기업부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청춘을 위로하고 있다. 위로와 배려는 장애인이나 노약자에게 필요한 몫이고 청년들에게는 우보의 ‘청춘예찬’을 읽어주며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인 청춘의 ‘뜨거운 피’를 끓게 해주는 것이 옳은 일이지 싶다.
아카데미 4관왕의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이 화제가 되었다. 겸손함과 유머 그리고 절제된 표현 등으로 지구촌 많은 이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였는데 그중에서 나의 시선에 힘이 간 곳은 “쿠엔틴 형님 사랑합니다”로 그 자리에 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애정과 존경을 표하던 장면이었다. 요즘 K팝, K방역, K뷰티, K바이오, K배터리 등등 많은 분야에 K를 붙인 작명이 유행인데 아주 고무적이다. 그런데 봉감독의 수상소감에 세계인들이 호응하는 것을 보며 거기다가 K예절이 담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무대는 우쭐거리는 곳이 아니다. 과거 일본이 그랬고 지금 중국이 역풍을 맞고 있지 아니한가? 개성과 창의성이 더욱 중시되는 글로벌 무대에서 과하지 않은 겸손과 한국 특유의 품격 있는 예절이 가미된다면 서양인들은 더욱 더 특별한 그 무엇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칠순이 훌쩍 넘은 어느 가수가 애절하게 부르는 ‘테스형’을 들으면 소크라테스가 벌떡 일어나 삶의 지혜를 한수 던져줄 듯하지 아니한가.
풍족한 삶의 척도를 어찌 소유의 과다로만 보겠는가. 간접적인 체험을 포함한 다양한 경험이 4차원의 세상에서는 더 유용할지도 모른다. 뉴욕출신의 시인 뮤리얼 루카이저 누님은 ‘경험을 들이쉬면 시(詩)가 나온다 (Breathe in experience, breathe out poetry)’라며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세련된 영어로 만나게 해주었다. 또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은 말했다. “와 피도 한방울 안 섞인 것들이 형님 동생하는지 아나? 같이 굶어도 보고 같이 도망도 쳐보고 같이 죽을 뻔도 하고 같이 얼싸안고 울어도 보고 그라믄서 형님, 동생하며 식구가 되능기라.” 이런 식구는 만들지 않더라도 ‘사랑에 뿌리를 두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라며 사랑에 관한 그림에 몰두했던 화가 마르크 샤갈 형님의 말처럼,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청년들이 상사나 선배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자연스레 사랑으로 귀담아 듣게 되는 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라본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그 어린이에게 가만히 말해주고 싶다. ‘라떼는 말이야, 부드럽고 달콤한 커피란다’라고.
박정환 재경울산향우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