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칼럼]관료들은 ‘부하’가 아니다

집권당·장관들 ‘민주적 통제’ 이유로
관료집단 정책활동 압력 가해선 안돼
파트너 지위 인정하고 협력 유도해야

2020-11-09     경상일보

요즘 관료들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열심히 정책을 만들어도 정치적 이유로 뒤집히기 일쑤이고, 이전 정권에서 특정 정책을 담당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는 정치권력의 요구에 번번이 소신을 접고 있으며, 사표제출과 번복이라는 소심한 저항만을 되풀이 하고 있다. 전 정부에서 국정교과서를 담당했던 관료들은 이미 한직으로 물러났으며,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진 원전 조기폐쇄 작업에 가담한 관료들은 장래에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관료사회가 정치권력의 과도한 개입과 통제로 흔들리고 있다. 이로 인해 관료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스스로 역할을 자제·축소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정책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치권력은 자신들의 의도를 실현시키기 위해 관료집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정치권력의 이념적 지향을 반영한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관료들의 동조와 협력이 필수적인 만큼 인사권, 법적 지휘권 등을 동원하여 관료집단을 이끌고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또한 관료들은 조직의 특성상 타성에 젖어 새로운 변화에 저항하고 기존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으므로, 정치권력에 의한 적절한 통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근자에 이른바 ‘민주적 통제’를 명분으로 관료사회에 가해지고 있는 정치권력의 압력은 지나친 감이 있다. 원래 민주적 통제는 국민들의 선거로 선출된 의회가 행정부의 폐쇄적인 관료집단을 감시·감독하는 것을 일컫는 개념이다.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 관료들을 국민들의 대표인 의회가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행정국가화 이후 단순한 집행업무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정책결정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관료들로 하여금 국민들의 의견과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활동을 하도록 의회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집권당이나 장관들이 관료들을 ‘부하’로 생각하고 윽박지르거나, 이미 작정해 놓은 대로 정책을 만들어 내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진정한 민주적 통제와는 거리가 멀다. 주지하다시피 관료집단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정책에 관한 최고의 전문성을 가진 집단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통제라는 이유로 이들의 제안을 무시하고 정치권력의 들러리로 세우거나 정파적 결정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관료집단의 사기 저하와 무관심을 촉발하는 것이다. 정치권력에 의해 이미 정책방향과 내용이 정해져서 관료들의 아이디어가 수용될 여지가 없는 경우 관료들은 능동적인 정책활동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지시하는 일만 조용히 기계적으로 처리할 뿐이다. 어느 경우든지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권력은 관료들에게 자존감을 심어 주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민주적 통제를 이유로 충성과 복종의 의무만 지울 것이 아니라, 정권의 중요한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고 협력을 유도해야 한다. 관료들은 정치권력의 ‘부하’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관료들은 공복(公僕), 즉 국민의 부하이다. 우리 헌법7조에도 ‘공무원은 국민전체의 봉사자이며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민주적 통제는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어야 하며, 정치권력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하는 것을 민주적 통제로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관료집단도 더욱 분발해야 한다. 공복으로서의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이 과정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