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어떻게 이 시대를 설명할 것인가

정약용 평생 스승으로 모신 황상처럼
현직 떠나서도 한결같이 내편 되어줄
사람을 곁에 뒀는지 스스로 돌아보길

2020-11-09     경상일보

“노회한 지방 관리들이 신임 수령이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화려한 안장을 한 말을 타고 부임해오는 것을 보면 비웃으며 기뻐한다. 그러나 거친 무명옷을 입고 옷차림이 검소한 것을 보면 두려워하고 근신한다.” 이 문구는 200년 전 다산 정약용이 57세에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 중에 지은 목민심서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은 지방 관리들의 부임에서 퇴임까지의 근무 자세와 행동지침을 기록한 책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나라 걱정은 변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오늘날 나라 전부가 청와대, 법무부, 국회의원 등 높은 관리들의 언행을 걱정하고 있다. 고요한 일요일 아침 목민심서 한 페이지만 읽어도 그 해답이 있건만 복잡한 용어들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전직이 변호사인 대통령, 전직이 판사인 법무장관(minister of justice),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벌이는 말잔치에 국민들이 피곤해하고 있다. 아무리 요리법을 몰라도 음식 맛은 모를 리 없다. 라면 하나 끊일 수 없어도 라면의 맛은 알고 있듯 요리사의 변명이 복잡할 필요가 없다.

다산은 16세부터 31세까지 아버지가 현감·군수·부사·목사 등으로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해 어릴 때부터 눈으로 행정의 폐단을 아버지 옆에서 보았고 자신도 33세 때 경기도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지방 행정의 문란과 부패로 인한 민생의 궁핍상을 생생히 목도했다. 뿐만 아니라 직접 역마를 관할하는 관청의 기관장인 찰방(察訪)·부사 등의 목민관을 지내면서 지방 행정에 대한 산 체험을 경험했다.

1970·198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가 전두환 정권을 거부한다고 외칠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해외순방 비행기 안에서 목민심서를 읽는 척했다. 적어도 그는 그가 이끄는 시대를 부끄러워했다는 증거이다. 양심이 그래도 좀 남아있었다는 증거다.

베트남 독립의 영웅이자 베트남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치민은 살아생전에 “목민심서를 몇 장 넘기는 순간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는 늘 침대 머리맡에 목민심서를 두고 읽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산 정약용의 제삿날을 기억하고 그를 기렸다는 말도 있다.

유배 중인 다산에겐 황상이란 어린 제자가 있었다. 강진 유배생활을 시작할 때 다산의 나이는 38세였고 황상은 12살이었다. 그때 맺어진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죽을 때까지, 그리고 양가의 후손들에게까지 계속됐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역사에 기록될만한 좋은 인연이 있는가?

환갑에 이르러 유배에서 풀린 다산은 전라도 강진을 떠나 고향인 경기도 마재(의정부)로 돌아왔다. 황상은 다산이 좋아하는 차를 매년 마재로 부쳐 보내곤 했다. 다산이 강진을 떠난 지 18년의 세월이 흐르고 황상의 나이가 48세, 다산의 나이 74세에 이르러 강진의 황상은 떠나간 스승을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스승을 뵙고자 길을 나선다. 스승을 죽기 전에 꼭 한번 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흘을 걸어서 스승의 집에 도착한다. 그리고 3일 동안 다산의 집에 머물렀다. 18년 만의 스승과 제자의 꿈같은 만남을 뒤로하고 황상은 다시 강진으로 귀향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스승의 부음을 듣는다. 그는 길을 되돌려 마재로 돌아가 상을 치른 후 강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10년 후 황상은 스승이 그리워 열흘길을 걸어 다산의 생가를 다시 찾는다.다산의 아들들은 이런 황상의 정성에 감격하고 두 가문은 계약을 맺는다. “두 집안의 후손들은 대대로 신의를 맺고 우의를 다져가라. 계약을 맺은 문서를 제군들에게 돌리노니 삼가 잊어버리지 말라.” 이 계약을 후세 사람들은 정황계안(丁黃契案)이라 부른다.

현재 정치 속에 있는 7080들이여, 정치를 떠나서도 그대들 옆에 남은 사람들이 있겠는가? 한 번만 자신에게 이 물음을 던져보고 가던 길을 갔으면 한다. 지금 내편은 다산에게 황상처럼 영원히 내편이겠는가? 그렇다면 계속 그리해도 좋을 것이다.

내 자신에게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직을 떠나 은퇴했어도 나는 황상처럼 한결같이 살겠는가? 다산처럼 제자들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서재곤 대형타이어유류(주)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