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태화강 합수부…암반 가공한 초석…연화문 수막새 출토
반구동유적은 신라의 국제항 사포였을듯
울산박물관 오늘 개막 특별전
‘신라의 해문, 울산 반구동’
고대울산 ‘사포’의 가치 조명
위치규명 지역사연구 불 댕겨
2020-11-23 홍영진 기자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고대 울산의 항구로 ‘사포’(絲浦)라는 곳이 등장한다. 현재까지 다양한 분석이 이어졌지만, 정확하게 ‘현재의 이 곳이 곧 사포였다’고 확정되지는 못했다. 24일 울산박물관에서 개막하는 특별전시 ‘신라의 해문(海門), 울산 반구동’에는 베일에 쌓인 사포의 위치를 ‘현재의 동천(東川) 옆 반구동 일원’으로 바라보는 내용이 다수 포함된다. 지지부진하던 고대울산 ‘사포’의 역사문화사적 가치는 물론 명확한 위치를 규명하는 논의가 활발해 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대 신라는 울산지역을 차지하고 나서 울산의 포구를 대외항구로 활용했다.
<삼국유사> 동축사 창건설화에는 인도 아육왕(아소카왕)이 보낸 배가 하곡현(河曲縣) 사포(絲浦)에 닿았다고 했다. 사포 근처에 울산지역 최초의 사찰도 세워졌다. 반구동 유적의 구릉에서 글자 있는 기와가 발견되었는데, 일각에서는 신라 진흥왕 대 사포 일원에 동축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선덕여왕 때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하며 들어 온 곳도 사포였다. 서해 하구가 포위된 상황이라 바닷길을 통해 울산 쪽으로 들어 온 것이다.
사포의 위치를 밝히는 일은 좀더 많은 연구와 검증이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년 전인 지난 2008년 반구동 유적의 발굴조사가 마무리되자 이 곳을 사포로 이해하는 학계 주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태화강과 경주에서 흘러오는 동천이 만나는 곳에서 항구 유적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건물지 가운데 자연암반을 가공하여 초석을 만든 특이한 구조도 나왔다. 바다와 강을 조망하는 누각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곳에서는 7세기 전반의 연화문 수막새도 대량 발견됐다. 건물의 권위와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사포는 일본 규수 북단 후쿠오카에 있던 대외교섭 공식창구인 대재부(大宰府·다자이후)와도 비교된다. 대재부는 고대한국과 중국과의 교섭을 관장하는 국가기관으로, 신라사신이나 무역상이 일본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사무를 봤던 곳이다. 대재부에 속한 홍려관은 신라와 당의 사신을 접대하거나 일본이 신라·당에 파견하는 사신단이 출입국할 때 숙박하던 영빈관이다. 사포에도 대재부의 흥려관 같은 건물들이 있었을 것이다. 울산시 중구의 울산도호부(동헌)와 객사(학성관)는 조선조 시설이지만, 시대를 거슬러 삼국 혹은 통일신라 그 즈음에는 지금의 반구동 유적으로 비정되는 사포에 그같은 공간이 있었다고 해석되는 부분이다.
이처럼 반구동 유적은 신라의 대외출입과 관련한 중요한 배후시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사를 연구하는 일각에서는 “현재까지의 고고학 발굴성과로 볼 때 이 곳이 사포로 추정되는 이유”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울산박물관 특별기획전 개막식은 24일 오후 2시 울산박물관 로비에서 열린다. 내년 2월14일까지 이어진다. 전시 이해를 돕기위한 ‘열린 역사 강좌’와 ‘큐레이터와 대화’ 등이 운영된다.
울산 반구동 유적
울산광역시 중구 반구동 303 일원. 2006~2008년 2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삼국~조선시대 존재한 항구시설 등이 확인됐다. 금속, 옥석, 토도류 등 1420여점 출토유물은 울산박물관에 소장됐다. 현재는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돼 있으며 단지 한쪽에 통일신라시대의 목책시설 등을 유추한 유적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문의 229·4733.
홍영진기자, 자료참조 <울산을한권에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