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78)]어머니의 배추

2020-11-23     이재명 기자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 소설(小雪)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문구다. 지난 22일은 본격적인 겨울이 온다는 소설이었다. 이 맘때가 되면 촌 사람들은 김장 준비를 서두른다.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기도 하며 겨우내 소한테 먹일 볏짚을 쌓아둔다.

소설 즈음에 가장 눈길을 받는 채소는 바로 배추다. 아직은 밭에 있지만 조만간 뽑혀 빨간 김장김치로 둔갑할 것이다. 속이 얼지 않도록 일일이 짚으로 동여맨 배추는 시골 사람들에게는 하나하나가 마치 보물단지 같다. 한포기 뽑아다가 칼로 냉큼 쪼개면 그 노란 알배기의 맛이란….



어머니에게 겨울 배추는 詩다/ 어린 모종에서 시작해/ 한 포기 배추가 완성될 때까지/ 손 쉬지 않는 저 끝없는 퇴고/ 노란 속 꽉 찬 배추를 완성하기 위해/ 손등이 갈라지는 노역의 시간이 있었기에/ 어머니의 배추는 이 겨울 빛나는 어머니의 詩가 되었다/…/읽으면서 배부른 어머니의 詩/ 시집 속에 납작해져 죽어버린 내 詩가 아니라/ 살아서 배추벌레와 함께 사는/ 살아서 숨쉬는 詩/ 어머니의 詩 ‘어머니의 배추’ 일부(정일근)



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일근 시인은 어머니에 관한 시를 많이 썼다. 시란 자연을 받아쓰기한 것이라고 했다. 한 포기 완성될 때까지 손 쉬지 않는 저 끝없는 퇴고(推敲)…. 이 겨울 어머니의 빛나는 시가 됐다.


우리가 많이 먹는 배추의 품종은 중국 북방지역이 근원이다. 배추의 ‘추’는 ‘채(菜)’가 변한 것이다. 한자로는 백채(白菜)라고 한다. 백채를 중국음으로 읽으면 ‘바이차이’이다. 바이차이를 빨리 읽으면 ‘배채’가 된다. 배춧잎은 밑둥이 희기 때문에 ‘흰 채소’란 뜻으로 백채(白菜)라는 이름을 얻었다.

배추가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시기는 삼국시대다. 고려의 이규보는 ‘탄협가’에서 가을배추를 노래하기도 했다. 당시의 배추는 지금과 달랐다. 이파리가 둥글게 말린 것이 아니라 길게 뻗어나간 것들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속이 꽉 찬 배추, 다시 말하면 ‘결구배추’로 김장 김치를 담근 것은 5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세계적인 농학자 우장춘 박사가 품종을 개량해 만든 것이다. 결구배추는 온대식물인 중국배추와 한대식물인 양배추를 섞은 품종이라고 할 수 있다.

1만원권 지폐를 속칭 배추잎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배추값은 내리고 양념채소는 껑충 뛰었다고 한다. 서리 맞으며 서 있는 배추 포기들을 바라보면서 ‘어머니의 배추’를 생각한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