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데이터 시대, 울산에 대한 단상
울산은 스타트업에게 축복받은 도시이다.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위용을 뽐내고 있고,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인 공업탑은 여전히 중심을 지키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도 중화학 제조업은 실물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성장했고 덕분에 전국 최고의 임금 수준으로 생산노동자로 쾌적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창업수도 낮은 편이다. 경쟁은 적고, 기회는 많다. 다만 그 기회가 대기업의 가치사슬의 일부분이 되는, 결과적으로 대기업 협력업체로 남고 만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울산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중심적인 도시다. 4차산업혁명은 모든 제조업에 서비스업 도입을 강제하고 있다. 자동차 메이커는 공유·결제 서비스를 만들고, 조선업은 자율운항 시스템을 개발하고, 정유사는 더 이상 기름만 팔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제조 노하우와 숙련된 노동자들은 변혁의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왔다. 그런 노하우들이 이전된 수도권의 연구소와 본사로 이동한 것만 뺀다면.
울산에 남은 것은 숙련된 노동자와 생산 시설 뿐인가? 아직은 아니다. 데이터는 이곳에 있다. 현장을 떠난 데이터는 시공간을 잃은 죽은 데이터가 되고, 현장에 적용되지 못하는 기술은 가치가 없음이 자명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고의 생산 데이터가 누적되어 있고, 나날이 생생한 데이터가 갱신되며 축적되어 간다. 사람 역시 경험으로 데이터를 학습하고, 매일 새롭게 갱신되어 가고 있다. 꽃이 핀 자리에 열매가 맺듯이, 데이터 스타트업의 자리도 이곳에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데이터 활용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데이터는 기업의 기술 노하우와 전략이 집약된 것으로 유출시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어 이에 대한 접근은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거나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각 기업들은 내부적인 자원을 통해 이를 분석하고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필요시 협력사나 혁신 스타트업 협력 프로젝트 등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 실험실 수준의 제한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개발된 기술은 현장에서 추가적인 비용을 발생시키거나,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 못하고 매몰되고 마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2019년 정부에서 시행된 규제 샌드박스는 선허용-후규제의 원칙으로 자유로운 실험·검증을 임시로 허용하는 제도이다. 울산시에서는 교통 빅데이터 플랫폼센터 구축사업을 시작으로 산학관이 협력하여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처럼 산학관이 공동으로 협력하여 현장의 고품질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산업계에서 이를 규제 샌드박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스타트업이 자유롭게 연구개발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된다면 세계 최고 제조업이 있는 곳에서 세계 최고의 빅데이터·AI 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
데이터 유출에 대한 산업계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철저한 보안체계를 구축하고, 실제 현장의 데이터와 인프라 지원, 이를 분석·활용할 수 있는 고품질의 인재들이 육성 공급되는 선순환 구조 확립을 통해 ‘데이터·AI 도시 울산’으로의 변화를 달성하고 2030년, 40년 변화된 울산에서 대한민국 데이터탑이 세워져 찬란하게 빛나기를 바란다.
김지인 팀솔루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