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80)]고향 까마귀

2020-12-07     이재명 기자

어제는 일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절기인 대설(大雪)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시기는 1~2월이지 12월은 아닌 듯 싶다. 찾아보니 원래 재래 역법(曆法))의 발상지가 중국 화북(華北) 지방이기 때문이란다. 화북지역은 네이멍구 자치구, 허베이(河北)성, 산시(山西)성을 말한다. 추운 화북지역에 비해 울산은 기후가 훨씬 온화한 편이다.

19세기 중엽 소당 김형수는 우리나라 열두 달의 농사일과 풍속을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라는 7언 고시의 형식으로 기록했다. 음력 11월의 시는 이런 내용으로 돼 있다.



때는 바야흐로 한겨울 11월이라/ 대설과 동지 두 절기 있네/ 이달에는 호랑이 교미하고 사슴뿔 빠지며/ 갈단새(산새의 하나) 울지 않고 지렁이는 칩거하며/ 염교(옛날 부추)는 싹이 나고 마른 샘이 움직이니/ 몸은 비록 한가하나 입은 궁금하네….



이 시기는 곡식이 곳간에 가득 쌓여 있는 때다. 당분간은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계절인 것이다. 그러나 울산을 찾는 대표적인 겨울철새인 까마귀는 먹이를 구하는데 애를 먹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들판에서 열심히 일한 소는 이 시기에 그야말로 ‘겨울 소 팔자’를 누리게 되지만 까마귀는 갈수록 궁핍해진다. 옛날에는 그래도 들판에 떨어진 이삭도 있었지만 최신식 농사기법이 도입되면서 이삭 마저 깡그리 없어졌다. 기계들이 짚은 물론이고 한톨의 이삭까지 돌돌말아 마시멜로 같은 이상한 포대기로 싸버렸기 때문이다.


울산은 겨울 저녁 무렵이면 떼까마귀와 갈까마귀가 태화강 주변을 선회하면서 환상의 공중곡예를 한다. 떼까마귀는 보랏빛 광택이 많이 나는 검은 털을 지니고 있으며, 갈까마귀는 목과 배 부분이 흰색에 가까운 잿빛을 띄고 있다. 까마귀는 새 중에서 IQ가 가장 높다. 침팬지와 비슷한 수준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줄 아는 놀라운 지능 수준을 갖고 있다. 필자는 TV를 보다가 나뭇가지를 이용해 나무 속의 벌레를 끄집어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태화강 까마귀는 해마다 10월13~17일 사이에 날아온다. 11~12월에 접어들면 그 수는 10만여 마리로 늘어난다. 시베리아와 몽골에서 매년 찾아오는 태화강 까마귀는 이제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속담에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하는 소리를 하는데, 태화강 까마귀는 한해도 울산 방문을 거르는 일이 없다.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는 반갑다고 했다. 흉조라고 쫓지 말고 모이 한톨이라도 더 주는 훈훈한 겨울이 됐으면 좋겠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