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52)]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의 환상
오스트리아 ③
전원적인 농촌 소도시 잘츠부르크의
중세 첨단양식 호헨잘츠부르크성
거대 첨탑으로 장식된 화려한 대성당
교구의 수장이자 영주였던 대주교의
교회적 도시국가 위용 그대로 간직
화려한 분수와 조각품으로 장식된
미라벨 정원과 별궁까지 돌아보면
종교개혁의 시발점 된 시대상 그려져
비엔나에서 잘츠부르크로 향하는 길, 기차 차창 밖으로 알프스의 산악풍경이 동영상으로 펼쳐진다. 기차가 산굽이를 돌때마다 환상적인 달력그림을 연출한다. 융단같이 고운 산록의 짙은 목초지와 장난감 같은 산장형 주택들, 어디선가 하이디와 요들송이 들려올 것 같은 풍경이다. 짙푸른 호수에 담긴 산 그림자와 앙증맞은 마을들은 만화영화 같은 판타지로 빠져들게 한다.
오스트리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대도시보다 농촌이나 소도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도시를 꼽는다면 잘츠부르크를 빼놓을 수 없다. 알프스 산록의 웅장한 자태와 잘차흐강(Salzach River)이 절묘하게 어울린 계곡, 우뚝 솟은 언덕 위에 버티고 선 중세시대의 성채, 강변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바로크 풍의 건물과 정원,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의 환상 속으로 빨려들 수밖에 없다.
이만한 목가적 전원 풍광이 어디 이 도시뿐이겠는가. 하지만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역사적, 도시적 의미까지 겸비한 도시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 도시는 중세초기에 유행했던 ‘교회적 도시 국가(ecclesiastical city-state)’의 모습이 보존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즉 대주교가 봉건영주로서 다스리던 도시국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대주교는 교회교구의 수장인 동시에 영주의 권력까지 가졌던 셈이다.
도시를 굽어보고 있는 호헨잘츠부르크(Hohensalzburg)성도 사실은 11세기에 게브하르트(Gebhard) 대주교가 건설한 성이다. 당시 잘츠부르크는 소금광산이 발견되어 떼돈을 벌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얻어진 막강한 재력은 성채와 교회, 수도원 등 도시를 고급화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첨단 건축양식으로서 후기 고딕과 바로크 양식이 비까번쩍하게 도시의 풍광을 바꾸면서 ‘알프스의 북로마’라는 별칭까지 얻게 된 것이다.
성은 하회처럼 강이 휘돌아 나가는 절벽 위에 세워져 도시를 내려다본다. 시내에서 성까지 오르는 경사열차가 있어 다리품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유럽의 어느 성 못지않게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하지만 11세기 초창기에 지어진 건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현재의 모습은 대부분 17세기 이후의 것이다. 하지만 대주교가 거주하던 황금의 방, 접견실 등 호화스러운 실내장식은 명실상부한 영주로서의 권력을 보여준다.
도시는 대주교가 관할하는 교회지구와 시민들이 생활하는 시민지구로 나누어진다. 교회지구는 돔 광장(Domplatz)을 중심으로 대성당, 수도원, 대저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구에서 중심이 되는 대표적 랜드마크는 잘츠부르크 대성당이다. 왕이나 귀족이 주재하지 않았던 잘츠부르크에서 이곳은 궁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에 이곳을 다스리던 대주교는 소금 전매로 얻은 자금을 대성당 건설에 쏟아 부었다.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을 좋아했던 그의 취향에 따라 호화스러운 바로크 성당이 건설되었다. 명품 대성당을 짓기 위해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들을 초빙했다. 건축가는 바로크의 우아하고 화려한 장식만이 아니라 79m에 이르는 거대한 첨탑을 양쪽에 두어 대주교의 위용을 강조했다.
청동 문을 열고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내부는 더욱 현란하다. 벽체는 회칠마감으로 캔버스처럼 깔끔한 바탕을 만들어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주도했다. 고딕이나 비잔틴의 무겁고, 어둡고, 신성한 빛과는 결이 다르다. 천정과 벽체에 강렬한 다채색의 회화가 흰색 바탕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입구에서부터 제단에 이르는 중앙부(nave) 천정에 그려진 천정화들은 시선을 제단으로 유도한다. 제단 앞에서 위로 전개되는 거대한 중앙 돔, 여러 면으로 분할된 천정화들이 하늘로 향한 상승감을 극대화 시킨다. 모차르트가 연주했다는 오르간이 없었더라도 그의 음악이 들려올 것 같은 공간이다.
강건너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가 되었던 미라벨 정원도 실은 대주교의 궁전에 부속된 정원이다. 이 궁전은 17세기 초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가 애인과 그 사이에 낳은 15명의 자식들을 위해 만든 것이라 한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정원은 기하학적 화단과 분수, 조각으로 장식된 바로크식으로 왕의 정원 못지않게 호사스럽다. 내연녀와 사생아까지 둔 대주교님의 사생활이 연상되면서 정원의 아름다움은 빛을 잃는다.
대주교님의 호사와 사치는 잘츠부르크 시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10km 정도 거리에도 대주교의 별궁이 소재하는데, 바로 헬부룬 궁(Schloss Hellbrunn)이다. 이 역시 바로크식 정원으로서 온갖 기화요초와 분수, 정자, 조각품으로 장식되었다. 규모만 작을 뿐 호화와 사치에 있어서는 어느 왕의 궁전이라도 견주어볼만한 수준이다.
‘물의 정원’에 설치해 놓은 오만가지 장난 분수는 더욱 가관이다. 정원과 궁전 곳곳에 속임수 분수(Wasserspiele)를 만들어 놓고 손님들에게 느닷없이 물벼락을 선사하는 장난을 즐겼다고 한다. 소위 주교라는 성직자가 얼마나 돈이 많았으면 이런 호사스러운 궁을 건설했으며, 얼마나 심심했으면 손님들을 초대해다가 물벼락이나 줄 요량으로 이런 장난분수를 만들었을까? 종교개혁이 필요했던 시대상황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