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시민이 참여하는 기억과 기념
지방분권 아래 울산내 과거 기념사업 잇따라
진실된 과거 아닌 망각에 기반한 창조도 다수
시대정신 반영·해석하는 시민 참여과정 절실
기억의 의미는 망각을 통해 만들어진다. 시공간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많은 일들을 잊어버린 덕분에, 인간은 남겨진 기억을 토대로 자신을 안정되고 일관되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니체는 ‘망각이 없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창조와 생성을 위해서는 망각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보았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귀중한 경험도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사건이 쌓이면 퇴색되고 잊혀진다.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은 애써 회피해도 트라우마의 형태로 흔적을 남기고 무의식의 영역에서라도 지속된다. 인간은 기억과 망각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개입할 여지가 있다. 각자의 삶에서 특정한 경험과 기억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재해석하고, 그 성찰 위에서 현재의 삶을 직조하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문화적 동질성을 구성하는 토대는 기억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공동체에서는 무엇을 기억할지, 어떻게 기억할지를 논의하는 과정이 있고 그것을 결정하는 방식이 제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모든 과거나 모든 기억이 빠짐없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수 구성원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 그것과 관련된 과거의 사람들, 그들에 대한 평가, 해당 사건의 의미를 가르치고 기념하는 방식으로 공동체의 역사는 생명력을 얻는다.
과거 사실들은 무한히 많다. 하지만 ‘사료’라는 형태로 살아남는 것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역사가들은 그렇게 전해진 사료를 통해 과거를 파악한다. 비록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재현할 수 없지만 ‘진실한 사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공동체가 우선적으로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다양한 형태로 묻혀있는 사료를 발굴하고 역사가와 시민들에게 공적으로 제공하는 일이다. 사람은 처지가 달라지거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기 삶에 대한 해석을 바꾼다. 공동체도 시대가 변하면 과거에 대한 해석을 재구성한다. 전근대의 역모와 반란이 오늘날 개혁과 혁명의 역사로 재평가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당대에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을 해석을 후대에는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얼마 전까지도 ‘지방’은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통치대상이었다. 1997년 광역시로 승격된 뒤에도 한참동안 울산은 국가적 경제발전을 담당하는 공업도시나 산업수도와 관련된 정체성 이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공해문제나 문화 불모, 시민의 정주의식 부족은 감내해야만 하는 산업화의 불가피한 그림자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어 지방 분권, 지역 경쟁력 강화라는 구호가 요란해졌다. 지금은 생태와 환경을 강조하고, 유무형의 문화 프로젝트가 우후죽순처럼 진행되고 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지역적 자율성과 역동성이 중시되자, 각 지역이 앞장서서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울산에서도 과거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활동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관공서 등 옛 건물이나 성곽의 복원, 박물관과 기념관 같은 시설의 건립, 고래와 한글과 울산큰애기 관련 조형물 설치 등은 모두 울산의 과거를 해당 사업의 근거로 내세운다.
그런데 실상 다수는 ‘진실한 과거’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망각에 기반을 둔 창조적 작업에 가깝다. 과거와 연결된 경우도 시대착오적 역사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거나 시민적 동의와는 거리가 있다. 공적 예산을 들이는 기념관이나 기념물의 조성은 ‘누가’ 결정하는 것이며, 시민들에게는 ‘어떤’ 정체성을 제공하려는 것일까.
진실한 삶의 의미는 ‘과정’에 있고 그 가치는 지향하는 ‘방향’으로 드러난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기억을 모아 역사를 구성하고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의미를 해석하는 시민 참여의 과정이 없다면, 희망하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 과제 앞에서 어느 누구도 특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특히 배타적 애향심이나 낡은 권위주의는 태화강에 띄워 보낼 때가 지났다. 역사적 기억과 망각, 그 해석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이 도시에서 ‘진정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허영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