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호 시인 3번째 시집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펴내

2020-12-17     이우사 기자

경북 경산 출신의 천수호(56·사진) 시인이 세번째 시집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가 독자들을 만난다.

사물을 보는 낯선 시선과 언어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가졌다는 평을 듣는 그는 ‘인간·언어·사물’의 상상적 관계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을 서정적 언어로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첫번째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에서는 시적 언어를 통해 세계의 모습을 시각화하고, 두번째 시집 ‘우울은 허밍’에서는 ‘귀·청각’을 통해 사물과의 소통을 시화(詩化)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가까운 이가 앓는 병과 죽음을 통해 관계와 가치를 무화시키는 어떤 낯선 것들 안에서 슬픔이나 두려움 이상의 의미를 발견해낸다.

총 67편의 시가 수록된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애도시처럼 보일 정도로 편편에 죽음과 이별의 이미지가 깃들어 있다. 

천수호의 시편들은 회화에 비유하면 원근법에 충실한 묘사보다는 사물의 질감이나 느낌, 그것들의 우연적인 조합이 만들어내는 낯섦의 미학에 가까울 것이다. 

자연물을 시적 소재로 삼으면서도 상투적인 서정을 답습하지 않고, 언어(글자)의 모양, 의미 등 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중시하면서도 형식 실험으로 흐르지 않는 시인의 시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시집의 제목이 된 문장,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라는 중의적 문장에서 수건은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땀에 젖은 댄서를 말려주는 수건 본연의 역할, 그리고 생명의 근원인 수분의 이동을 통해 죽음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일. 수건은 그리하여 이 시에서 죽음의 화신과 같은 존재로 변모한다. 

어딘가에 닿고자 하는 댄서의 열망이 담긴 격렬한 몸짓과 침묵(죽음) 사이의 낙차를 우리에게 친숙한 수건이라는 일상적 사물을 통해 형상화한 데서 우리는 삶과 연결되어 생동하는 죽음을 인지하는 시인의 섬세한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삶과 가로놓인 죽음들을 너무 멀리 떠나보내거나, 현실을 직시하고 나아가기 위해 그것들을 너무 가까이 품어안아야 했던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두 세계 사이에 놓을 맑고 투명한 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너무 늦지 않게 천수호가 빚어낸 빛나는 창으로서의 이 한 권의 시집을 당신에게 보낸다.

천수호 시인은 경북 경산 출신으로 명지대학교에서 현대문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후 강연과 함께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김두수기자 dusoo@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