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울산의 흥망성쇠 함축한 우시산국 역사 재조명

‘우시산국-실존을 증명하다’
울주문화원, 연구총서 발간
전덕재 단국대 교수 등 5명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울산
우시산국의 수립·변천과정
울주하대유적 의미 등 분석

2020-12-20     홍영진 기자

울산역사의 공백기라 할 수 있는 초기국가 시기 울산을 살펴보는 연구서가 나왔다.

<우시산국-실존을 증명하다>(울주연구 제18호)는 울주군(군수 이선호)과 울주문화원(원장 노명숙)이 지난 1년여 동안 기획, 현장답사, 심포지엄, 랜선토론 등을 진행하며 정리한 내용들을 한 권으로 정리한 것이다.

시작은 전덕재 단국대 교수의 ‘삼국·통일신라시대 울산지역의 동향과 신라의 진출’로 시작된다. 신라의 울산지역 진출과 영역화 과정은 물론 나말여초 흥례부의 설치와 울주로의 개편과정까지 더듬는다.

김창석 강원대 교수의 ‘우시산국 성립과 변천에 관한 시론’에서는 4세기 이전의 울산지역에 대한 연구조사 성과를 문헌사학 및 고고학적으로 다룬 뒤 우시산국의 위치와 성립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김 교수는 ‘학계에서는 탈해이사금 시기를 1세기 후반이 아니라 3세기 중후반으로 본다. 이때 이후 어느 시기엔가 우시산국이 사로국에 복속되었고, 직접지배가 이뤄지는 시기는 5세기 후반이후라고 본다’고 했다.

안재호 동국대 명예교수는 ‘하대 목곽묘 집단의 사회적 위상’에서 ‘울주 하대유적은 한반도 남한에서 김해 양동리유적과 쌍벽을 이루며 가히 5세기대 고총고분에 버금갈 정도의 규모 큰 봉토분과 체계적인 묘역을 형성해 온 집단이었다. 문헌의 우시산국이 울산지역에 있었다고 한다면, 하대유적이 바로 그 군장들의 묘역이라고 확신하며, 이시기 하대정치체는 낙랑사회를 모방하면서 경주의 사로국보다도 발달한 사회였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양훈 전KBS부산총국 PD는 ‘설화와 역사에 바탕한 우시산국사 복원’, 김규호 경주대 교수는 ‘탈근대 관광시각의 우시산국 역사문화촌 조성방향’에 대해 실었다.

기획, 학술회의에 이어 책 출간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진행한 이상도(사진) 울주향토사연구소장은 “울주의 정체성을 밝히는 중요한 카워드 가운데 우시산국이 있다. 역사학, 고고학, 구비전승 그리고 이들 구슬을 꿰어 울주의 자원으로 만들 관광학까지 염두에 두고 전국을 찾아 최고의 전문가를 모시고 우시산을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책 출간은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지속적인 역사조명을 위해 시민과 지자체의 관심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노명숙 울주문화원장은 “울산이라는 지명의 시원을 말할때 ‘우시산국’을 떠올린다. 역사서 속 우시산 분량은 아주 짧지만 수백년 흥망성쇠의 잔상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진위를 알기위한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다. 지난 1년여의 과정으로 출간된 연구서가 마중물이 되어 우리 국사가 새롭게 정리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