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82)]동지팥죽과 코로나
2020-12-21 이재명 기자
21일은 동지(冬至)였다. 한마디로 한해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이날부터 해는 점점 길어져 뜨거운 여름날 하지(夏至)에 이르게 된다. 동지는 혹독한 추위와 얼음이 언 팥죽이 연상된다. 필자는 동짓날 친구들과 어울려 집집마다 들러 팥죽을 훔쳐먹은 적이 있다. 얼음이 서걱서걱 언 팥죽을 부엌에서 먹고 있으면 어른들이 “누가 왔나?”하면서 짐짓 모른척 해주었다.
동지고사(冬至告祀)는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뿌리는, 잡귀(雜鬼)의 침입을 막는 행위를 말한다. 팥죽은 울타리 안, 장독대, 방 안, 헛간 등 집안 여러 곳에 뿌리거나 갖다 놓았다.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을 보면 ‘공공씨(共工氏)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疫疾) 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친다’라고 기록돼 있다.
팥이 귀신을 쫓는데 사용된 것은 그 색깔이 붉은색이기 때문이다. 붉은색은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처럼 붉은 팥은 옛날부터 벽사(僻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졌다.
동짓날에는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한다고 해서 주(周)나라에서는 이 날을 설로 삼았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중국에 예물을 갖춘 동지사(冬至使)를 파견했다. 동지가 지나면 비로소 낮이 길어지고 그만큼 햇볕의 양도 많아진다. 햇볕이 많아진다는 것은 양(陽)의 기운, 즉 태양의 기운이 세져간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동지를 생명력이 부활하는 ‘작은 설’, 즉 ‘아세(亞歲)’라고 불렀다. ‘동지첨치(冬至添齒)’는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뜻이다.
울산에서는 21일 동짓날 오전 7시28분에 해가 떠서 오후 5시13분에 해가 졌다. 하루의 절반 이상인 14시간15분이 밤이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날 이후로 해는 갈수록 길어진다. 동지는 어둠의 터널이 아니라 새 생명의 출발인 것이다.
강추위 속에서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잡귀를 쫓아내는 동지팥죽의 효과가 하루빨리 나타나기를 기원해 본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