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심리클리닉]잘못된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8)배우자의 행동과 의도를 구분하기

2020-12-22     석현주 기자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에서 주인공 장 발장은 돈이 없어 빵을 훔쳐 달아난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굶주린 조카들을 먹이기 위한 선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고 나면 우리는 그의 잘못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행동과 의도는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타인의 행동에 기반해 의도를 추측하는 프레임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좋은 행동은 선한 의도로, 타인의 나쁜 행동은 악한 의도로 해석한다. 그러나 부부 관계에서만큼은 이러한 해석을 조심해야 한다. 이유는 우리 대부분은 배우자에게 악한 의도를 갖고서 잘못을 저지르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배우자의 행동과 의도를 분리하지 못할 때 오해라는 늪에 깊이 빠지게 된다. 다음 기술되는 40대 부부처럼 말이다.

“남편은 제가 힘들다고 하면 저보고 그만하라며 소리 지르고 더 화를 내요. 남편은 제가 속 터져 죽기를 바라는 사람 같아요.”

아내는 이미 남편에 대한 애착이 깨진 상태였다. 나는 그녀가 격앙된 감정을 다소 누그러뜨린 상태에서 다시 물었다. 화를 내는 남편의 표정이 어땠는지 말이다. 그녀는 사실 남편도 힘들어 보였다고 말했다. 과연 그녀의 생각처럼 남편은 정말 악한 의도를 갖고서 화를 내는 걸까?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남편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로 아내에게 부부 상담을 권유했다.

몇 차례 부부 상담이 이뤄진 후 아내는 힘들어하는 자신을 매번 다그치는 이유를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과거 상처 기억을 꺼내는 것이 힘들었지만 아내의 격려에 힘을 내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술 취한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어린 저를 안고서 울며 말했습니다. 저만 아니면 이렇게 살지 않는다고요. 사실 저도 어머니가 아버지랑 저만 두고 떠나지 않기를 바랐었기에 어머니의 불행이 다 제 탓인 것 같았습니다. 아내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울고 있는 아내 모습은 마치 울고 있던 어머니처럼 저를 힘들게 합니다. 선생님.”

남편의 내면에는 어머니의 불행에 죄책감을 느끼던 어린아이가 아직도 울고 있었다. 그 내면의 상처는 그가 의도치 않은 분노를 일으키는 주된 이유였다. 그의 분노는 사실 그가 지닌 죄책감의 다른 표현이었다.

부부 관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서로의 의도를 반드시 행동과 구분 지어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 ‘미쓰 홍당무’의 대사처럼 어떤 사람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한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배우자 또한 나름의 이유가 분명 마음속 어딘가에 존재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유가 있다고 한들 잘못된 행동은 분명 고쳐야 한다. 이때 자기 자신은 그러지 않는다며 배우자를 다그치기만 하는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배우자의 분노, 짜증, 무관심 이면에 감춰진 진실한 감정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배우자가 상황마다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이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송성환 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