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83)]세밑
바야흐로 세밑이다. 세밑은 한 해가 끝날 무렵을 말하는 것으로, 세모(歲暮)라고도 한다. 세밑이 되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이 습관처럼 떠오른다. 올해만큼 다사다난했던 해도 없었다. 온 국민의 하루 일과는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마무리됐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국민들이 두 패로 극명하게 갈라져 싸웠다. 코로나 악몽과 정치 분열에 시달린 국민들은 마침내 ‘우울증’이라는 깊은 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은 흘러간다.
공자가 어느날 강가에 홀로 앉아 무심하게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가는 것은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 이 말은 <논어> ‘자한(子罕)’편에 실려 있다. 원문은 이렇다.
“子在川上曰(자재천상왈), 逝者如斯夫(서자여사부) 不舍晝夜(불사주야)”
여기서 ‘천상지탄(川上之嘆)’이라는 말이 나왔다. 공자도 물처럼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세월을 탄식한 것이다. 세계의 성인인 공자가 이럴진대 범인들이야 말한들 무엇하랴. 아무리 코로나19가 횡행해도 지나간 세월은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 문신 박세당은 ‘세모(歲暮)’라는 시에서 세월 따라 늙어감을 서러워했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다가오니 기쁜 마음은 줄어들고(歲去年來歡意減),/ 새해가 오고 한 해가 가니 늙은 얼굴을 재촉하네(年來歲去老容催)./ 떨치고 떠나가는 지난해를 견딜 수 없거늘(不堪舊歲抛將去),/ 닥쳐오는 새해를 참을 수 있겠는가(可耐新年逼得來)
그러나 신경림 시인은 ‘세밑’에서 사랑과 희망을 발견한다. 지나간 한 해는 고통이었지만 그 속에는 새해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들어 있다.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뒤돌아본다/ 푸섶길의 가없음을 배우고/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새소리의 기쁨을 비로소 안 한 해를/ 비탈길을 터벅거리며 뒤돌아본다…자리에 누워 뒤돌아본다/ 만나는 일의 설레임을 알고/ 마주 보는 일의 뜨거움을 알고/ 헤어지는 일의 아픔을 처음 안 한 해를// 꿈속에서 다시 뒤돌아본다/ 삶의 뜻으로/ 또 새로 본 이 한 해를 ‘세밑’ 중에서(신경림)
코로나19와 정치의 사분오열 속에서도 저녁노을은 여전히 아름답다.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도 사람들은 새소리의 기쁨을 깨닫는다. 세월은 가지만 만나는 일의 설레임을 알고, 마주 보는 일의 뜨거움을 안다면 세월은 결코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