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85)]동장군과 겨울왕국

2021-01-11     이재명 기자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아요// 각시님 각시님 안녕하세요/ 낮에는 햇님이 문안 오시고/ 밤에도 달님이 놀러오시네// 고드름 고드름 녹지 말아요/ 각시님 방안에 바람들면/ 손시려 발시려 감기 드실라

1920년대 초 아동문학가 류지영이 노랫말을 쓰고 윤극영이 곡을 붙인 동요 ‘고드름’이다. ‘영창(影窓)’은 비치는 창, 곧 유리창이다. ‘각시방’은 새색시가 있는 방을 가리킨다. 이 동요는 예쁜 각시가 있는 방 창문에 고드름을 발처럼 엮어 걸어 놓는다 내용이다. 동심의 순수와 맑은 고드름이 수정처럼 빛나는 시(詩)다.

지난 5일은 일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이었는데, 과연 그 이름값을 했다. 지난 8일 오전 7시30분께 올 겨울 들어 최저인 -12.2℃를 기록했다. 이처럼 기온이 떨어지면 모든 움직임이 멈추게 된다. 높이 33m의 신불산 홍류폭포는 원래 무지개가 핀다고 해서 ‘홍류(虹流)’라고 이름붙여졌는데, 올 겨울에는 하얀 빙폭(氷瀑)으로 변했다. 흘러내리던 물마저 얼어버리고 시간마저 멈춰버렸다.

범인을 잡을 때 쓰는 “꼼짝마!”라는 표현은 영어로 “Freeze!”이다. 얼음처럼 그대로 있으라는 명령이다. 겨울에 가장 인기가 많은 영화 <겨울왕국>은 원제(原題)가 ‘Frozen’이다. 직역하면 ‘얼어붙은’이란 뜻이다. <겨울왕국>의 일본어 제목은 ‘안나와 눈의 여왕’이고 중국어 제목은 ‘氷雪奇緣(빙설기연·얼음눈의 기이한 인연)’이다. 아무리 봐도 ‘얼어붙은(Frozen)’보다는 <겨울왕국>이 훨씬 다가온다.

동장군은/ 가녀린 산새들 심장을 쪼아먹고 자란다/ 동장군은/ 흙 밑의 숨죽인 풀씨들 신음소리를 먹고 살이 찐다/ 동장군은/ 가난한 사람들 한숨소리를 듣고 더욱 용맹해진다/ 동장군은/ 언제나 나이를 먹지 않는 미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동장군’ 일부(나태주)

1812년 나폴레옹1세는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나섰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매서운 추위에 수많은 희생자만 남긴 채 대패하게 된다. 이를 두고 영국 언론은 ‘제너럴 프로스트(general frost) 덕에 러시아가 승리했다’고 표현했다. 한 일본 작가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번역하면서 이 ‘제너럴 프로스트’를 ‘冬將軍(동장군)’이라고 옮겼다. 우리말에서 ‘동장군’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1948년 10월15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추울수록 따스한 가슴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