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만의 사회와 문화 (19)]백인 복음주의자들의 과잉 정치개입과 반성

종교가 정치 지배할때 차별·폭력 만연
교회로 부 축적한 정치목사들 부추겨
일부 복음주의자 기독교 국가론 비판

2021-01-12     경상일보

미국은 기독교 국가인가. 미국사회 막강 파워그룹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미국이 청교도 정신에 따라 세워진 나라이므로 기독교적 가치 위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위 ‘기독교 국가론’이다. 이는 ‘이민자의 나라’ ‘문화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양식있는 백인, 비백인, 비기독교도들의 생각과 부딪힌다. 근래의 미국 대선은 바로 이 종교 관점을 중심으로 대결하고 있다. 이를 ‘문화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트럼프는 이 가치관의 대립을 교묘히 파고들어 다수 힘 있는 백인 남성의 입맛을 맞추는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자신의 정치를 전개해왔다. 트럼프의 멕시코 국경에 장벽 세우기, 인종차별의 일상화, 차별 반대 시위 강경 진압, 낙태 반대, 동성애 반대, 반 이슬람, 미국 이익 우선주의 등은 모두 ‘백인 복음주의자’들을 의식한 제스처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어느 하나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실타래가 꼬인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초기 미국이 청교도 또는 개신교 전통 위에서 독립국가로 출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선포하지 않았고, 1791년 수정헌법 제1조를 통하여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지 아니한다’라고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미국은 건국부터 ‘세속국가’로 출발했다. 미국의 조상들이 국교를 금지하고 종교선택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자신들이 영국과 유럽에서 종교적 이유로 박해를 받고 생명을 위협당하고 공무원이 될 수 없었던 비참함에 대하여 다시는 미국 땅에 그러한 불합리한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절실한 선언이었다.

이 선언을 우리는 ‘정교분리(政敎分離)’ 또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 원칙이라고 한다. 이는 현재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거의 모든 민주국가들이 받아들이는 대원칙이 됐다.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근본주의와 극단주의가 지배하여 테러와 폭력, 차별이 번성한다. 최근 미국 의회 의사당에 난입한 ‘프라우드 보이스 Proud Boys’와 ‘백인 복음주의자’의 공통점은 기독교 국가론이며 백인 우월주의이다. 이는 기독교도가 아닌 자, 백인이 아닌 자에게는 차별과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며 실제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나쁜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미국이 기독교를 바탕으로 하는 ‘종교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신념에 근거하여 몰표를 던진다. 시작부터 잘못된 판단이고 시도이다. 나쁜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신도들의 감성을 호도하여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부추긴다. 이러한 정치목사들은 교회를 통하여 부를 축적-세습하는 대형교회(메가 처치) 목사들이다. 미국 복음주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한국 교회에서도 비슷한 폐단들이 목격된다. 저질 정치목사, 대형교회 부자세습, 코로나19 방역 무시, 백신 거부 등. 무지한 복음주의 목사들은 교인들에게 “대통령 선거는 복음주의 성도들의 영적 전쟁터”라고 전투력을 고취시켜 왔다.

그러나 무책임한 복음주의 지도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복음주의 소셜액션>의 니키 마야제토는 “성경이 기독교인들에게 이방인을 포용하라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일부 백인 신도들의 입장은 다르다”며 기독교 국가론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세계를 경악시킨 트럼프 지지 우익 무장단체 ‘프라우드 보이스’와 성경을 든 폭도들에게 <종교뉴스 Religion News Service>는 간곡히 요청한다: “기독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침묵하는 자들은 우리 민주주의와 교회 증거 모두에 해악이 된다. 복음주의 목사 팀 켈러는 말한다: 기독교인들이 정당과 연대하는 일은 우상숭배입니다.…복음을 일개 정치안건으로 축소시키는 겁니다.”

한규만 울산대학교 교수 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