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38)]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2021-03-11     경상일보

남한강을 따라가는 절터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불교가 융성했던 나말 여초, 남한강 물길을 따라 백여 곳이 넘는 절집들이 흥성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 폐사지로 변했고 무너진 잔해들만 남아 불심이 활활 피어나던 옛 영화를 이야기한다. 그중에서 원주 부론면의 법천사지와 거돈사지, 원주 지정면 흥법사지는 절터여행의 백미로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고승들의 발자취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른 아침, 거돈사지에 들어선다. 넓은 절터를 지키는 삼층석탑이 눈길을 끈다. 거돈사지 삼층석탑은 밤하늘에 은하수가 낮게 펼쳐지는 여름 초저녁에 그 진가를 발휘한다. 노을이 절터에 깔리는 가을 으스름에 은은하게 드러나는 삼층석탑이 그려내는 풍경도 그만이다. 그러나 대지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봄기운이 옅은 안개를 밀어 올리는 아침에 마주한 석탑도 한껏 기운차다. 탑 앞에 놓인 배례석 윗면에는 연꽃 한송이가 아침 햇살을 머금고 화사하게 피어난다.

보물 제750호 거돈사지 삼층석탑은 별다른 장식이 없이 소박하다. 이중의 기단위에 삼층의 탑을 세운 전형적인 신라 석탑으로 높이가 5.4m이다. 그러나 훨씬 높아 보인다. 뒤편 금당지의 높이와 비슷하게 축대를 만들고 흙을 채운 토단 위에 탑을 세워 상승감과 균형미를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한 때 거찰의 면모를 증명하듯 우뚝하다. 금당지에 한 가운데 깨어지고 마모된 상처투성이의 거대한 석불대좌가 있다. 그 위에 대불이 앉아 계셨을 터. 대좌 위의 부처가 석탑을 바라보려면 저 높이가 알맞춤했을 것이다.

거돈사지 입구에는 1000년은 족히 된 느티나무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다. 온 몸으로 절집의 흥망성쇠를 함께 읽어 내리느라 이리저리 뒤틀리며 굽이쳐 자란 느티나무는 모두를 품어 줄 듯 고요하다. 그 아래 놓인 의자에 앉으면 폐사지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편하기도 하고 미묘하게 아프기도 하다. 깊숙이 등을 기대고 앉아 삼층석탑을 바라본다. 햇빛이 탑의 하얀 몸체 위로 거침없이 기어오른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