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95)]개나리 처녀

2021-03-22     이재명 기자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윤석중의 시 ‘봄나들이’다. 바야흐로 개나리가 산에 들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개나리는 한 송이가 아니라 한데 어우러져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아름답다. 개나리는 보통 우물가에 수양버들과 함께 많이 자란다.



개나리 우물가에 사랑 찾는 개나리 처녀/ 종달새가 울어울어 이팔청춘 봄이 가네/ 어허야 얼씨구 타는 가슴 요놈의 봄바람아/ 늘어진 버들가지 잡고서 탄식해도/ 낭군님 아니 오고 서산에 해지네~

이 노래를 부를 당시인 1958년 가수 최숙자는 17세였다. 수줍은 열일곱 처녀, 그의 간드러진 목소리와 구성진 가락은 6·25 이후 상처난 민초들의 가슴을 어루만져주었다. 우물가에서 서산 해가 질 때까지 낭군님을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 여인의 서정이 수채화처럼 눈에 선하다. 노랫말에 나오는 우물은 마을 어귀에 있던 공동우물터를 말한다. 김홍도는 공동우물터에서 물동이를 이고 나르던 여인들의 모습을 ‘우물가’라는 제목으로 화첩에 담아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우물가, 개나리 처녀의 탄식은 길기만 하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개나리’는 ‘개’와 ‘나리’로 재분석될 수 있을 것 같으나 ‘개’의 의미 파악이 어렵고, ‘나리’도 정체를 알기 어렵다. ‘개나리’의 ‘개’를 ‘참 것이나 좋은 것이 아니고 변변하지 못한 것’을 뜻하는 접두사로 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개나리’에 쓰인 ‘나리’가 ‘나리꽃’의 ‘나리’와 식물적 특성이 현저히 달라 서로 관련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국어원은 설명하고 있다.

개나리는 우리나라가 원산인 고유의 특산식물이다. 워낙 흔하고 화려하다 보니 서양에서 들여온 조경수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국립수목원은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으로 우리나라 식물들의 영어이름을 재정리했는데, 그 때 개나리를 우리말 발음 그대로 ‘Gaenari’로 명명한 바 있다. 선조들은 옛날 개나리를 ‘만리화(萬里花)’라고도 불렀다. 화사하고 풍성한 노란 꽃이 만리 밖에서도 보인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봄철 온 국토를 노랗게 물들이는 장관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눈웃음 가득히/ 봄 햇살 담고/ 봄 이야기/ 봄 이야기/ 너무 하고 싶어// 잎새도 달지 않고/ 달려나온/ 네 잎의 별꽃/ 개나리꽃//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길게도/ 늘어뜨렸구나… ‘개나리’ 일부(이해인)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