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반구대 옛길 복원을 기대하며
추위가 꺾이고 초록이 잠 깰 무렵인 3월 초, 새로 전입한 선생님 몇 분과 함께 늘 해보고 싶었던 반구대 옛길 탐방에 나섰다. 반곡초등학교에서 시작해 고하마을을 거쳐, 반곡천을 따라 반구대로 가는 이 길은 조선시대 지도에도 나와 있을 정도로 오래된 길이다. 또한, 반구대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기도 하다.
지금은 갈수기라 반곡천을 끝까지 따라 내려가면 대곡천과 합류되는 지점에서 반구대와 암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고하마을 이장님의 말씀만 믿고 무작정 나섰다. 물이 줄어든 반곡천에 작은 돌 몇 개로 징검다리를 만들면서 길의 흔적을 따라 걸었다. 다행히 마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폭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우리는 대곡천과 합류되는 지점에서 물길에 막혀 지척에 보이는 반구대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왔지만 1시간 만에 반구대를 간다는 사실에 큰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흥분되었다.
이 옛길은 고려말 포은 정몽주 선생님이 귀향살이를 하시며 걷던 길이라 추측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반구대에서 명시를 남겼던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와 같은 선비들이 걷던 길이라 한다. 수몰되기 전 100여 가구가 살았던 한실마을의 사람들이 이 길을 통해 언양장을 다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연댐의 건설로 길이 끊긴 상태이다.
반구대 옛길을 걸으면서 여러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정몽주 선생님은 어떤 심정으로 이 길을 걸으셨을까?’ ‘구곡문화를 즐겼던 선비들은 마차를 타고 왔을까?’ ‘한실마을 사람들은 장날 달구지에 내다 팔 농작물을 싣고 덜컹거리며 지났겠지?’ ‘어두워지면 무서워 어떻게 걸었을까?’ 하는 생각 등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는 이야기 길이었다. 물소리와 솔바람의 상쾌함까지 음미하면서 걷는 길은 아주 특별한 체험이었다. 그리고 이 좋은 길을 여러 사람에게 알려주고, 반드시 복원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반구대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은 천전리 각석과 사연에서 반구대로 들어오는 산길이 있다. 천전리 각석 입구는 주차장이 없고 사연 쪽에서 들어오는 길은 너무 멀어 산책 기분으로 나서기는 힘들다. 그러나 반곡천을 따라가는 옛길은 대중교통이나 차량을 이용해 반곡초까지 와서 반곡천을 따라 1시간 남짓 걸으면 반구대로 들어올 수 있다.
반곡천이 대곡천과 합류되는 지점에 징검다리를 놓으면 갈수기에는 선사문화길과 바로 연결할 수 있다. 또한 반구대암각화박물관까지만 산길로 연결하면 천전리각석과 대곡박물관 그리고 암각화까지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다.
반구대 옛길의 출발점이요, 대곡분교장까지 품었던 반곡초등학교는 1947년 해방 후 교육을 통해 나라를 살리자는 뜻으로 지역주민의 자발적 기부로만 세워진 학교이다. 그러나 옛길이 끊기고 농촌인구 감소와 고속도로와 고속전철이 지나게 되면서 마을은 쇠락하게 되었다. 이어 학생 수가 줄고 시설 또한 열악한 학교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지난해 울산에서는 처음으로 학교 단위 공간혁신학교로 선정되었다. 체육관과 도서관 메이커스페이스는 물론 주차장과 사택을 리모델링한 카페테리아까지 주민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반구대 옛길이 복원될 것이라 기대하며, 그 출발점을 위한 주차장을 배치하고 있다. 차가 다니지 않는 농로나 오솔길로 이어진 마을 둘레길을 살려 산책코스의 중심지 학교로의 역할도 계획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계획이 학교 단독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지자체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
반구대는 울산의 국보 2개를 품고 있기도 하지만 역사와 자연생태 관련한 많은 보물을 안고 있다. 반구대 옛길이 복원되면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게 되어 울산의 명소가 될 것이다. 더불어 그 출발점인 반곡초는 포은 선생님의 뜻을 이어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고 마을 지역과 상생하는 학교로 거듭날 것이다.
김경순 울산 반곡초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