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97)]복숭아꽃 살구꽃
지난 4일은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청명(淸明)이었고, 5일은 개자추(介子推)를 생각하며 찬밥만 먹는다는 한식(寒食)이었다. 청명과 한식은 하루 사이에 있어 예로부터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일반’라는 속담이 생겨났다. 이 맘때가 되면 눈보라처럼 떨어지던 벚꽃이 지상으로 나딩굴고 어느 사이엔가 살구꽃과 복사꽃이 발그레하게 피어난다. 살구꽃과 복사꽃은 ‘봄’과 ‘고향’ 같은, 아득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꽃들이다.
청명 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淸明時節雨紛紛)/ 길 가는 나그네 애간장 끊어진다(路上行人欲斷魂)/ 목동을 붙잡고 술집이 어디냐고 물어 보았더니(借問酒家何處有)/ 목동이 손 들어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네(牧童遙指杏花村) ‘청명’ 전문(두보)
두보의 시 ‘청명(淸明)’에서 ‘살구꽃 피는 마을’은 술 익는 주막, 즉 행화촌(杏花村)을 이른다. 두보의 시가 널리 퍼진 뒤 막걸리집 기둥에는 두보의 시구절이 가는 곳마다 나붙었다. 따로 주기(酒旗)가 꽂혀 있지 않아도 선비는 금세 술집임을 알아차렸다. 또 술집 앞에는 으레 한두 그루의 살구나무를 심었다. 살구나무는 그 술집의 훌륭한 표지 구실을 했다.
복사꽃은 복숭아나무의 꽃이다. 도연명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한 어부가 복사꽃 숲에 들어갔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도연명은 이 낙원을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고 표현했다. 또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유비, 관우, 장비는 복사꽃밭에서 천하통일을 하자는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다졌다. 복사꽃은 지상낙원이자 이상국가를 향한 염원이었다.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희 오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후략)
‘어서 너는 오너라’ 일부(박두진)
민주주의가 꽃 피는 지방선거가 한창이다. 그러나 십년 세도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고 했다(權不十年 花無十日紅). 이 꽃잎들도 언젠가는 낙화유수가 되어 떠내려 갈 것이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