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한자는 레고다
한자에도 자음과 모음이 있나요? 올해 첫 한문 수업에서 받았던 질문이다. 20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받은 제일 황당한 질문이었다. 나는 ‘저를 당황하게 하는 좋은 질문입니다. 한자라는 문자의 본질에 의문을 품었네요. 우리말은 한글이라는 소리글자인데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서로 체계가 달라요. 이 두 문자 사이에서 여러분이 느끼는 혼란을 그대로 표현했군요! 라며 한자라는 문자의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학생의 질문은 여러모로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내가 수업 중에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한글은 모음과 자음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소리를 표현한다. 영어 또한 a부터 z까지 알파벳을 조합해서 소리를 표현한다.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문자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한자를 바라보면 정말 외계어도 이런 외계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이런 생각을 거의 해 본 적이 없었다.
다음 수업부터는 아예 질문노트를 만들었다. 수업 후 수업 내용 혹은 한자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적고 이유를 쓰게 했다. ‘질문의 크기가 결국은 자신의 앎의 크기다’라는 근사한 말을 덧붙이고 이 질문들을 토대로 프로젝트 학습 보고서를 써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의 질문은 많았다. 다양하고 범위도 넓었다. 한자는 누가 만들었나요? 언제부터 썼나요? 선생님은 모든 한자를 다 알고 계신가요? 한자를 다 외우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한자 없이도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는데 한자는 왜 배워야 하나요? 한자는 몇 개일까요?
우선 학습자가 느끼는 외계어같은 한자에 대한 이해를 우리말 자음과 모음, 영어의 알파벳처럼 단순화할 필요를 느꼈다. 이런 고민의 와중에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레고로 로봇을 만들다가 ‘엄마 이 블록이 없어. 이 기본 블럭이 있어야 로봇의 팔을 접을 수 있는데….’라고 말했다. 아하, 레고! 기본 조각들을 가지고 얼마든지 자신의 원하는 형식으로 조립이 가능한 무한한 확장이 가능한 레고, 맞다! 한자에도 레고가 있었지. 한자는 가상의 정사각형 안에 글자를 쓰는 방식이다. 이 공간에서 사용하는 기본 조각에 해당하는 글자가 바로 부수 214자이다. 이 블록들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한자는 만들어진다. 外는 바깥(외)라는 글자로 구조적으로 夕(저녁석)과 卜(점복)이라는 부수 글자 2개의 결합이다. 바깥이라는 의미가 생긴 것은 고대 중국과 관련된다. 고대 중국에서는 아침에 주로 점을 쳤고 이는 아침에 기운이 좋아 점괘가 잘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의 침입 상황에서는 저녁(夕)이라도 점(卜)을 쳐서 전쟁의 승패를 알아봐야 했기 때문에 관례에서 ‘벗어나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한자 학습은 오랜 역사를 통해 다듬어지고 확정된 한자 이면에 담긴 스토리를 탐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자를 레고 블록과 연결한 아이디가 참신하다고 아이들이 말한다. 그동안 기본 한자 학습 없이 바로 문장부터 가르쳤던 지난날의 폭력적인(?) 학습 방식을 반성해야겠다. 양수진 울산여상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