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16)]아이들에게 필요한 시간

코로나로 집단활동 생략된 성장기학창시절 소중한 추억까지 앗아가청소년기 정서치유 함께 노력해야

2021-04-06     경상일보

인간은 정서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기분이나 느낌같은 말로 표현되는 심리적 상태를 소중히 여기고 기분이 나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느낌이 좋은 것을 추구한다.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욕구라고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기분이나 느낌을 잘 정리하고 무리 없이 소화하기 위해서 책을 읽고 운동을 한다. 사람을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시는 일도 이러한 정서를 편안한 상태로 변화시키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자신의 기분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기분을 위해서도 많은 언어를 사용하고 노력을 기울인다. 매일 사용하는 SNS에서 상대방의 작은 반응에도 감사 문자를 보내는 것은 타인의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다. 좀 더 친숙한 사이라면 사소한 일에도 엄지를 척 들고 당신 최고를 외치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격려한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좀 더 신중한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 의사결정이나 행동 선택도 기쁨과 슬픔, 신뢰와 분노 같은 정서에 많이 의존한다는 것은 누구나 매일 경험하는 일이다.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에서도 지역정서를 앞세우는 까닭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정서와 감정은 인간이 자신의 안전과 정신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적인 장치라고는 하지만 어떤 정서는 우리가 생활하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지나친 분노와 슬픔같은 정서가 그렇다. 그 분노나 슬픔이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에는 평생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로 작용한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렇고 소설이나 영화의 주제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을 봐도 그렇다. 60년 전에 나온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아직도 전쟁을 겪은 세대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야기로 반복된다.

전란과 같은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어린 시절의 어려운 경험은 나머지 삶의 시간에 상처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우리 주변의 어린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까닭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아이들이 성장과 적응의 기회가 되는 친구들과의 접촉 시간을 잃어버리고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들여다보아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나마 모이는 곳에서도 마스크로 무장하고 말을 아끼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걱정스럽다. 친구들과의 집단적인 활동이 생략된 성장시간이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경험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동네가 필요하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과의 다양한 경험이 심성과 정서의 발달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 사람은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밝은 모습으로 간직된 기억 속에는 어려운 현실을 견뎌낼 힘과 앞날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의 씨앗이 간직되어 있다는 뜻이다. 특히 호기심과 설렘이 넘치는 어린 시절의 경험일 경우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힘이 더 강하고 지속적이다. 지난날의 추억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냉정한 사람이라도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무감동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평범한 학생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지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들은 더러 있다. 앞으로 나란히. 바로.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발걸음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눈치껏 줄을 맞추던 친구들의 모습을 기억하는 일은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앞으로 나란히 서는 일이 사회에서 처음 겪는 공동생활의 규칙이었던 것이다.

입학식과 졸업식도 없고 친구들과 공도 차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무의식이나 정서 속에 남아있는 것은 결코 밝고 가벼운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기억과 밝은 정서가 학력보다 더 절실하고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코로나와 싸우는 지혜 중에는 이러한 염려도 포함되어야 할 것 같다. 김상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