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98)]영산홍 꽃잎에 산이 비치다

2021-04-12     이재명 기자

영산홍(映山紅)이 국가정원 일대에 꽃불을 피워올렸다. 영산홍을 한자로 쓰면 비칠 영(映)과 뫼 산(山), 붉을 홍(紅)이 되겠다. 굳이 조어(造語)를 하자면 ‘산이 비치는 붉은 꽃’이라고나 할까. 국가정원 언덕배기에 꽃물결과 남산의 산그림자가 넘실거린다. 미당 서정주는 슬픔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한(恨)을 자주 노래했다.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댁//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산 너머 바다는/ 보름사리 때/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영산홍(映山紅)’ 전문(서정주)



소실댁(小室宅·첩)은 영산홍처럼 작고 빛깔이 고운 여인이다. 서정주는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린다’고 시를 시작한다.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숨어서 사는 소실댁, 님이 그리워 한 시도 자리를 뜨지 못하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기다림에 지친 갈매기조차 소금 발이 쓰려 울고 있다. 온 산을 물들이는 영산홍은 왜 이다지도 붉게 타오르는가.

영산홍과 철쭉은 색과 모양이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영산홍의 경우 꽃잎에 반점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철쭉에는 반점들이 많다. 또 철쭉은 수술의 개수가 8~10개 이상인데 반해 영산홍은 5~6개밖에 안된다.

영산홍은 조선조 세종 때 일본에서 들어왔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보면 ‘진달래보다는 늦게 피고 철쭉보다는 일찍 핀다’고 기록돼 있다. 강희안이 펴낸 <양화소록>을 보면 영산홍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세종 23년(1441) 봄, 일본에서 왜철쭉 두어 포기 조공으로 보내왔다. 대궐 안에 심어두고 봤는데, 꽃이 무척 아름다워 중국의 최고 미인 서시(西施)와 같다’는 구절이 있다. 서시는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원한을 갚기 위해 미인계를 썼을 때 선발된 미녀이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수백 품종이 개발돼 곳곳에 심어져 있다. 오래된 사찰 경내는 물론이고 주택의 뜰에 심어 마당을 환하게 밝힌다.

영산홍은 연산군이 좋아하여 연산홍(燕山紅)이라 부를 정도였다. 그러나 영산홍은 시들 때는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말라붙은 채 오래간다. 시든 후에는 영산홍보다 더 추한 꽃이 없을 정도다. 이를 눈여겨본 실학자 신경준은 “때가 이르러 번화함과 무성함이 생겨나면 이를 받아들이고, 때가 달라져서 번화함과 무성함이 가 버리면 결연하게 보내 주는 것이 옳다”며 화려함 뒤의 추함을 경계했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