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교과서 너머 진짜 시민정치의 세계로
지난 4월7일에 치러진 울산남구청장 재선거를 앞두고 우리반에는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포털사이트에 ‘온남초’를 검색하면 ‘6학년 6반’에 관한 기사가 줄줄이 뜨는 신기한 경험! 남구청장 후보자들에게 당선되면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에 갇혀있는 돌고래들을 바다로 보내달라고 쓴 편지 때문이다.
6학년 1학기 사회 1단원은 민주주의의 발전과정과 시민 정치 참여를 다룬다. 교과서에는 5학년 2학기에 배운 역사의 연장선으로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항쟁)들이 나오며, 국민이 주인이 되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1인 시위, 캠페인, 서명운동, 시민단체 활동, 누리집에 의견 올리기 등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정치 참여 방법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어쩐지 아이들에겐 먼 일인 것처럼 보였다. 민주시민교육이 활성화되고 교육청의 시책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경우도 많아졌지만, 어린이들에게 차례가 오는 일은 여전히 드물다.
그렇다면 교실에서 아이들이 직접 정치 참여 경험을 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남구청장 재선거가 있었고, 곧 선거와 행정부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니 이보다 더 적절한 시기는 없었다.
우리는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을 둘러싼 문제점과 환경단체, 고래연구센터, 시민 등 여러 입장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시설을 책임지는 남구청장 재선거에 출마한 3명의 후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공약을 내걸었는지를 기사를 읽으며 알아보았다. 아이들은 고심한 끝에 세 후보 중 한 명을 골라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며 강조했던 점은 ‘예의를 갖춰서, 단호하게’였다. 공식적인 글쓰기에서는 읽는 사람을 고려해 공손하고 정제된 표현을 사용하되, 자신이 설득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어린이가 어른에게 떼를 쓰는 모습이 아니라, 시민이 정치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몇 년 뒤에는 저에게도 투표권이 생기며, 어떤 정치를 하시는지 지켜보겠다’는 멋진 문장을 썼다.
그 후 이 활동에 대한 소식은 여러 지역 언론에 소개되었고, 몇몇 아이들은 편지를 쓴 후보로부터 답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답장을 받는 것보다 아이들이 더 기다리는 건 고래생태체험관에 남아있는 돌고래 네 마리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일일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태어난 해 개관한 고래생태체험관에서 지금까지 돌고래들이 여덟 마리나 폐사한 일에 큰 충격을 받았다.
태어나고 자란 이 도시가 ‘고래들의 무덤’이라 불린다는 것에 부끄러워했으며, 돌고래 쇼를 보며 즐거워했던 걸 지금 생각해보니 돌고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남은 삶이라도 돌고래들이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길 바랐다.
누군가는 남구청의 일에 왜 울주군 학생들이 편지를 쓰냐고 물었지만, 이 아이들에게 돌고래 방류 문제는 단지 선거 지역구가 다르다고 해서 남의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듯 ‘정치’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며, 아이들은 충분히 이 문제를 우리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아이들은 정치적 연대의 폭이 엄청나다. 지구 반대편의 북극곰을 위해 포스터를 그릴 수 있는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우리 지역에 갇힌 돌고래를 위해서도 편지를 쓸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변화에는 늘 많은 시간이 걸린다. 4·19혁명에서부터 무수한 민주화 운동과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민주주의가 발전했듯, 아이들도 편지 한 통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행정부에 대해 알아보는 수업 중에 돌고래 방류 관련 업무를 하는 부처가 해양수산부라는 것을 안 아이들이 “그럼 이제 해양수산부에 편지 써야겠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자, 그럼 이제 교과서 너머 진짜 시민 정치의 세계로 가보자. 이민정 온남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