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

변화를 위해 지나치게 애쓰다보면
여러제도가 만들어져 오히려 혼란
도덕경 ‘무위이치’ 의미 새겨봐야

2021-04-25     경상일보

혁신, 개혁, 대전환 등 변화는 통상 긍정적으로 미화된다. 분열과 대립을 지양하고 통합과 상생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정치가 변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선(善)이다. 정부 기능과 역할도 변화를 선도해야 하는 것을 당위로 생각한다. 개인의 경우에도 바뀌지 않으면 무능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조직내에서 현상을 무난하게 관리하는 정도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하지만 무조건 새로운 아이디어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강박이다.

1년 이상 지속되는 코로나 사태로 힘들다. 백신 접종으로 회복을 희망하지만 K자형 불균형 회복으로 서민의 삶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회복의 양극화다. 정부는 국민의 삶과 행복을 보장하여 줄 책무가 있다. 공직자는 이에 복무한다. 변화를 목표로 하는 정책중에서 선의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 없겠지만 부작용이 있다면 교정되어야 한다. 치솟는 아파트값과 전세대란, 높은 부동산 세금 등을 바라보면 집 가진 사람도 미혼인 아이들의 결혼후 주거를 생각할 때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책의 미숙함은 처음부터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분출하는 포스트모던적 시대에 정부의 기능과 정치의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작은 정부와 보이지 않는 손은 확장과 개입을 무기로 하는 큰 정부에 밀려났다. 정의와 평등의 실현, 복지와 삶의 질 향상, 평화의 정착은 적극적 개입이 전제된다. 하지만 보여주기식보다 정치가 작동하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평안함을 느끼고 행복감이 높아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어떤 정치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최상의 정치인지에 대해서는 수없이 논의되어져 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작위적인 통치행위나 지나친 간섭이 없는 가운데 백성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를 이상적이라고 본 것이 옛 동양적 사고였다.

논어에서 공자는 “애쓰지 않고도 천하를 잘 다스린 사람은 순임금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 분이 무엇을 하셨겠는가.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남면하여 똑바로 앉아 있었을 뿐이다”라고 했다. 통치자가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현명한 인재를 배치하고 이들이 책임감을 갖고 청렴하게 직분을 수행하도록 하면 국가가 잘 다스려진다는 뜻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최상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단지 있다는 것을 알 뿐인 자이고. 다음은 백성들이 친애하고 칭찬하는 자이며 다음은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자이며 다음은 백성들이 업신여기는 자이다. 신의가 없으면 백성들이 믿지 않는다. 아득히 말을 잊고 공을 이루며 일을 수행할 뿐이다. 그러면 백성들이 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게 된다”라고 했다. 인간의 심성과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무위이치(無爲而治)를 최상으로 보았다. 무위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관여하는 일이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지식이나 욕망 때문에 지나치게 애쓰다보니 여러 제도가 만들어져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 무슨 일이든 준비해 놓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차분히 지켜보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무위이치는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원시적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변화를 위한 변화, 편향된 이념에 따른 쟁투가 피로감을 가져다주는 현실에서 한번쯤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무위의 정치에 대한 바람은 별들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찾고 바람직한 내일을 소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담겨져 있을 것이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