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북구 신설 역명이 ‘북울산박상진역’이 되어야 하는 이유
이제 얼마 뒤면 북구 도심을 가로 지르던 동해남부선 철도와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호계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1월 경이면 창평동에 새로 지어진 역에서 기차를 탈 수 있다.
우리 구는 창평동 신설 역사(驛舍) 이름을 정하기 위해 지난 1월29일부터 2월15일까지 주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지명위원회를 거쳐 ‘북울산(박상진)역’을 만장일치로 신설역명으로 결정했다. 지명위원회는 구민의 다양한 의견 중에 가장 많이 나온 명칭과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지명에 박상진 의사의 역사성을 신설역 이름에 병기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신설역 이름에 대한 주민의 관심이 높았기에 지명위원회의 부담감도 컸다. 위원회는 난상토론 끝에 북울산(박상진)역이라는 명칭을 최종 결정했다.
필자는 역사책에서 박상진이란 이름을 본 기억이 없다. 그가 주축이 되어 조직한 비밀결사대인 대한광복회와 부사령을 지낸 김좌진 장군은 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정작 총사령을 지낸 박상진 의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고헌 박상진 의사는 울산의 대표 독립운동가다.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했지만 사퇴 후 독립운동에 투신해 대한광복회를 이끌었다. 대한광복회는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정치가 자행되는 암울했던 시기에 의열투쟁을 전개했다. 박상진 의사는 1918년 일경에 체포돼 4년의 옥고를 치르다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돼 순국했다. 짧았지만 뜨거웠던 그의 삶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박 의사는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기도 하다.
올해는 고헌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년이다. 100주년이란 의미 있는 해를 맞아 각계에서 서훈 상향 노력, 순국 100주년 기념주간 선정 등 박 의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순국 100주년에 박상진 의사의 생가가 인접한 신설 철도 역사명에 그의 이름이 들어간다면 그 의미 또한 길이 역사에 남을 것이다. 신설역은 박상진 의사 생가에서 직선거리로 1㎞ 정도 떨어져 있다. 역 바로 옆에는 박상진 의사의 이름을 딴 송정박상진호수공원이 있다.
북구 지명위원회는 지명과 역사성을 골고루 살펴 북울산역에 박상진을 병기하기로 결정하고 국가철도공단에 결과를 보냈다. 그러나 공단 측은 북구 지명위원회의 결정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철도노선 및 역의 관리지침’을 들어 지명위원회가 제출한 역명 사용이 어렵다는 의견을 전달해 왔다.
한글로 된 명칭인 경우에는 최대 6자 이내를 원칙으로 하고, 역명부기도 광역철도만 가능하기 때문에 북울산(박상진)역은 불가하다고 한다. 또 역명 제·개정 기준에 인명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박상진’은 사용할 수 없다고도 했다. 신설역 광역철도 연장운행이 올해 국가예산에 포함돼 광역전철 운행은 사실상 확정된 상태임에도 철도공단은 광역전철역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또 인명을 사용할 수 없다라는 규정이 없지만 인명이 역명 제·개정 기준에 들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박상진’을 사용할 수 없음을 밝혀 왔다.
이미 경춘선에 우리나라 대표 소설가 김유정의 이름을 딴 ‘김유정역’이 있음에도 말이다. 김유정역은 한국철도 최초로 역명에 사람 이름을 사용한 역이다. 2004년 이 지역 출신의 저명 문인인 김유정의 이름을 따 김유정역으로 역명을 변경했다.
철도공단의 역명 사용이 어렵다는 의견에 철도노선 및 역의 관리지침을 아무리 살펴봐도 수긍하기 쉽지 않다. 지명위원회 위원이나 역사 명칭 설문조사에 참여한 주민들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뻔하다. 이제 공은 국토교통부 역명심의위원회로 넘어갔다. 철도공단의 내부지침만으로 박상진 의사의 이름과 그 역사성을 역명으로 남기려는 후손들의 의지가 꺾여서는 안 될 것이다.
박상진 의사 생가가 내려다 보이는 동해남부선 새로운 역 이름은 북울산박상진역이 마땅하다. 100년도 더 전, 만주를 호령하고 일제를 떨게 한 그의 당당함과 기개가 먼 훗날 동해선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질 날을 상상해 본다. 김현동 울산 북구청 교통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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