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미술작품으로 표현된 암각화 보다 더 친근하게 와닿아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 - (13)겸재 정선부터 박대성까지

2021-05-02     홍영진 기자

故김창락 작가 ‘울주 반구대 암각도’
암각화 예술작품으로 활용한 첫 사례
서양화로 300호 대작 탄생시켜 눈길

2008년 겸재 정선 반구 그림 알려지고
2018년 작자미상 암각화 문인화 발견
같은해 박대성 작가의 ‘반구대 소견’
구·추상 넘나드는 수묵 세계 선보여

김섭 ‘시간여행’·양희성 ‘원시회귀’
지역 미술작가들 작업에도 단골 소재
대곡천 암각화 새로운 활용 고민하는
신박한 문화기획은 울산이 주도해야


지난 회차 제목은 ‘현대미술이 된 바위그림’이었다. 기사가 나간 이후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시민단체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사인의 바위그림이 수천년 시간 차에도 불구하고 예술창작의 진원으로 자리매김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전문가들 인터뷰로 심층취재 해 달라는 당부였다. 반구대 암각화를 소재로 한 예술품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고도 했다. 기술, 과학, 역사 못지않게 예술문화야 말로 반구대 암각화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반구대 암각화를 예술작품 소재로 활용한 첫 사례는 1978년으로 기록된다. 한국적 사실주의 회화의 선구자 고 김창락(1924~1989) 작가가 그 해 ‘울주 반구대 암각도’를 완성했다. 반구대 암각화가 1971년 발견됐으니, 발견 이후 7년 만에 서양화로 그려진 것이다. 김창락 작가의 그림은 가로 3m, 세로 2m 크기의 300호 대작이었다. 암각화 주변의 사실적 묘사에 더해 작가적 상상력이 가미된 작업이었다. 60여명 선사인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작은 배로 절벽에 다가가 사다리를 놓고 바위그림을 새기는 장면도 눈에 띈다. 제물인 멧돼지를 얹은 바위단장 앞에서 여성 사제가 제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그림은 당시 국가주도 민족기록화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됐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 사업은 군사정부 시절인 1967~1979년 JP(김종필) 주도로 문화공보부가 당대 최고의 동서양 화가들을 위촉해 ‘우리민족의 국난극복과 경제발전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영구히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진행됐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반구’ 그림이 알려진 건 2008년의 일이다. 조선의 회화 애호가인 권섭이 소장했던 8쪽짜리 ‘공회첩(孔懷帖)’에 겸재의 산수화가 포함 돼 있었던 것이다. 그림이 그려진 지 250여년 만이다. 당시 본보는 ‘겸재 정선, 반구대에 반했다’는 제목으로 1면에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9년 뒤인 2017년 겸재의 화첩으로 <교남명승첩>에서 ‘언양 반구대’라고 적힌 그림 한 점이 또 발견됐다. <교남명승첩>에는 영남지방 34개 지역의 58개 명소가 들어 있는데, ‘언양 반구대’가 그 중 한 곳으로 포함된 것이다. 이는 정선이 경상도 하양(지금의 경산)과 청하(지금의 포항) 현감으로 지내던 시절 잠시 반구대를 방문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1년 뒤, 2018년에 작자미상의 문인화 한 점도 나왔다. 집청정에서 반구대 방향을 바라 본 실경화다. 가로 22.5㎝, 세로 26.5㎝ 크기로 소장자는 정상태 전 울산중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이었다. 다만 낙관이 없어 작가가 누구인지, 언제 그려진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 종이 상태로 보아 조선 말기에 그려진 것으로만 추정된다.

같은 해 눈길을 끈 또다른 작품은 경주에 작업실을 둔 박대성 작가의 그림이었다. 당시 경주엑스포 솔거미술관은 박 작가의 신작과 소장품 100여점을 새로 전시했는데 그 중 대표 작품이 바로 그해 완성한 ‘반구대 소견’이었다. 박 작가가 국보 285호인 울주군 대곡천변 반구대 암각화를 모티브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수묵의 세계를 완성한 것이다. 이 작품 역시 가로·세로 각각 5m와 2m에 이르는 대작이다.

박 작가는 전통수묵의 현대적 해석으로 국내 화단에서 독보적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대가가 반구대 암각화로 새 작품을 완성한 것도 화제였지만 무엇보다 솔거미술관이 이 작품과 연계해 일반인의 이해를 돕는 미술 이벤트를 실시한 점이 눈길을 모았다. 야외 드로잉 행사인 ‘반구대 소견-신석기부터 오늘까지’는 반구대 암각화를 재해석한 ‘반구대 소견’을 먼저 감상한 뒤 미술관 밖으로 나가 경주엑스포의 가을풍경을 박 작가의 독특한 화풍처럼 자유롭게 표현하는 스케치 행사였다.

‘반구대 암각화’는 지역작가들의 작품에서 단연 단골 소재로 활용된다. 김섭 울산대 교수의 ‘시간여행’ 속에는 줄무늬 호랑이와 점박이 맹수류, 선사인의 신체 이미지가 등장한다. 김 교수 특유의 작품 속에 반구대 이미지를 곁들였을 뿐이지만 기존 그림에 변화를 주고 반구대 역시 독특한 분위기로 새롭게 연출됐다. 반구대로 수년 간 대작을 완성해 온 양희성 작가도 있다. 그의 ‘원시회귀’ 연작은 지난 2008년 울산시청 신청사 미술장식품 공모에 당선되기도 했다. 양 작가의 작업은 반구대 암각화 속 다양한 이미지를 수백여점 판넬로 제작한 뒤 이를 한데모아 격자무늬 대형 작업으로 완성한 것이다.

최근 반구대 암각화를 품은 울산시 울주군 대곡천 일원이 울산지역 최초의 명승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선정 소식만 알려졌을 뿐 이렇다 할 기념행사가 없어 아쉽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역 역사문화예술계에서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확산우려 때문에 기념행사를 자제해야 한다지만, 사진전 혹은 미술전시 등은 괜찮지 않을까 한다. 그 동안 알려져 온 반구대 암각화 소재의 여러 작품을 울산에 유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몇년 전 경주 솔거미술관 이벤트와 최근 진행 중인 양산 통도사 서운암의 반구대암각화 수중전처럼 울산에서도 괜찮은 기념행사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역사, 예술, 교육, 문화가 일체된 신박한 아이디어로 명승지정을 자축하고 세계유산등재를 앞당기는 단초를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