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칼럼]책임 있는 마무리

文 정부 임기 이제 마지막 1년
연금개혁·낙태·저출산 문제 등
민생 우선 밀린 과제 해소해야

2021-05-10     경상일보

현 정권의 임기가 이제 딱 1년 남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우리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많은 변화를 시도했고, 그동안 시행했던 정책의 결과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은 기간 동안 마무리를 제대로 하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과 같은 것은 워낙 정권의 대표 브랜드 정책이라 1년 내에 큰 변화를 도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 소소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된 사안들이 적지 않다. 남은 기간에는 그동안 미뤄놓은 이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좀 더 집중하여 다음 정부의 부담을 덜어 주었으면 한다.

우선 국민연금 문제이다. 당초 국민연금 개혁은 대통령 공약사항이었다. 추계에 의하면 2057년 무렵에는 국민연금 기금이 완전히 고갈될 것이며, 고령화, 저출산 등으로 이 시기가 더욱 빠르게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2018년 국민연금 개혁방안을 제시했다. 기금고갈 시기를 연장하려면 부담률을 높이고 혜택을 줄이는 방법 밖에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러자 연금개혁 논의가 그대로 중단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이해와 설득을 구하기는커녕 아예 언급조차 없다. 언젠가는 터질 미래의 시한폭탄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낙태죄도 마찬가지이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형법의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일치 결정을 내렸으며, 해당 조항을 2020년 말까지 개정하도록 판결하였다. 이에 정부는 2020년 10월,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국민의 여론은 극심하게 갈라졌다. 특히 낙태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라는 여성계와 이에 반대하는 종교계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그러자 정부는 더 이상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한 채 헌재에서 정한 기한을 넘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민들의 인권과 건강이 관련된 낙태죄 이슈가 정부의 무관심과 무책임 속에 어정쩡한 채로 방치되어 있다.

출산율 저하 문제도 심각하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작년 0.84명으로써 세계 최하위 수준이며, 특히 현 정부 들어 줄곧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정부의 정책활동은 획기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이 15개월째 저출산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고 한다. 물론 저출산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단기적인 노력에 의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이기도 하다. 만일 성과를 내기 어려워서 아예 언급 자체를 꺼리는 것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방치되고 있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전 정부에서 수행한 한일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폐기되었지만 후속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른 대학의 구조조정 문제에도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사안들은 국민들의 여론이 갈라져 있거나,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다. 모두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들이다. 그래서 일단 시간을 벌면서 회피해 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1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그대로 다음 정부에 넘겨 버리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이제 그간 필요 이상으로 매달려 온 ‘적폐청산’과 같은 실체도 불분명한 추상적 이슈나 ‘검수완박’과 같이 민생과는 거리가 먼 이슈에서 벗어나,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던 문제들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 문재인 정부의 남은 1년은 그동안 밀려 있던 숙제를 차분히 해소해 나가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이것이 바로 국민들이 기대하는 정권 말기의 책임 있는 마무리 모습일 것이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