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또 다시 엄마

2021-05-13     경상일보

“내 새끼가 학교를 가지 않으려하고 짜증이 심하네요. 이 할머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는데 이상해졌어요. 둘째는 교실에서 친구와 다투다 뛰어내리려 해 선생님이 놀래서 연락해왔어요. 이 일을 우째요?”

손녀 둘을 양육하는 할머니가 애태우며 하는 말씀이었다. 부모의 이혼 등으로 결손가정이 되면서 조부모와 사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편부모는 생업으로 멀리 가있거나 아예 재혼을 해 따로 거주하면서 양육을 부모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잊어야 하는 상황이다. 조부모는 자식 다 키워내 시집장가를 보내고 이제 쉬어보나 했는데 다시 이런 삶을 맞는다. ‘새끼들이 불쌍해서’ 내칠 수도 없다. 백발의 부모는 오늘 아침에도 아이를 깨우며 힘겨운 하루를 시작한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여인의 3단계’ 라는 명화가 있다. 아기를 안은 젊은 어머니의 모습은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고 그 옆에는 머리칼이 덮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고개 숙인 여인이 있다. 쭈글쭈글한 가슴은 늘어졌고 배는 축 쳐지고 등은 굽어져 있는 늙은 여인이다. 황혼이 되면 쇠잔한 몸이 될 수밖에 없지만 마음은 평화롭기를 바라지 않는가? 그런데 여기 노년의 휴식을 잃고 손주를 양육해야 하는 할머니는 저런 몸이지만 표정은 아이를 안은 젊은 여인처럼 자애로우며 애가 탄다. 모성은 위대하다. 이런 모습이 요즘의 일부 젊은 어머니들과 비교된다. 내 아이만 보는 어머니는 학교를 달려가 선생님에게 삿대질을 하며 독설을 하는 등 거침이 없다. 꾸준히 학교를 찾아가서 조심스레 아이 문제를 상의해 왔던 할머니는 선생님의 권유로 소아정신과에 오신 것이었다.

할머니께 이렇게 당부를 드렸다. “십대 아이에 성숙함을 요구하지 말고 기다려주는 태도가 필요해요. 아이는 부모를 잃은 상실에 대해 혼란한 감정반응이 있답니다. 분노하고 자해하는 것은 부모가 자신이 싫어서 떠난 것이라 여기고 자책하는 감정이 터져 나온 것 일수도 있거든요. 전문가에 맡기러 오신 것은 잘하신 일입니다. 감정기복이 심한 아이를 돌봐야 하는 할머니도 우울해서 감정조절이 힘들어요. 자칫 자식으로 속상한 어머니와 부모를 잃은 아이가 서로 상처를 주게 됩니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할머니의 잔소리는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임을 알지만 속상하지? 세대 차이가 나서 말이 안 통할 때도 있을 거야. 부모가 떠난 것은 네 탓이 아니야. 그래, 낳아서 책임도 지지 않은 부모가 문제지. 아버지, 어머니처럼 살지 않고 싶다고 했지? 근데 이렇게 화만 내다보면 너도 네 기분만 생각하는 사람이 된단다. 넌 큰 상처를 받았어. 착한 너는 다른 이에게 분풀이를 못하고 가장 만만한 자신을 자학하고 자해하고 있는 것 같아.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이란다.”

최근 사회적 소외계층과 가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지원이 증가해 왔다. 울산시는 대리위탁양육가정에 지난해보다 6만7000원을 인상한 양육보조금 26만7000원을 지급한다. 조부모가 18세 미만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손자·손녀를 대리 양육하는 가정이 대상이다. 양육보조금을 비롯해 기초수급 생계급여 월 55만원, 교육급여 28만~45만원, 심리치료비 월 20만원이다. 고등학생 손자·손녀를 대리 양육 시 한 달 최대 141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교육청에서는 치료비 지원을 하고 있다. 학교에 신청을 해 소정의 서류를 들고 협약을 맺은 정신건강의학과에 오면 된다. 그리고 의료봉사를 하는 의원들이 있으니 남구청과 행정복지센터의 사회복지과에 문의를 하면 의사회와 연계돼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폭력과 학대를 겪는 가정을 위한 해바라기센터, 정신질환자의 복지를 위한 정신건강센터 등 전문기관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부디 대리위탁양육가정 등 힘든 가족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절박한 위기를 잘 견디어내기를 바란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