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천전리 각석 새긴 선사인, 반구대 암각화에도 흔적 남겨

2021-05-17     홍영진 기자

이하우 한국암각화학회장
“각석과 암각화는 불과 2.3㎞ 거리
같은 기법을 쓴 바위그림 장인들
동시대에 비슷한 흔적 남겼을 수도”
‘짝지어 있는 동물’ 표현방식 주목
‘갈기’ 기법 두곳서 똑같이 발견돼
시간적 접점 있을 것이라는 해석


울산시 울주군 대곡천에는 50년 전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와 그 보다 1년 먼저 알려진 ‘천전리 각석’ 2개의 국보가 있다. 그 동안 두 바위그림을 제각각 설명하고 해석하고 연구하는 작업은 많았다.

하지만 하나의 물줄기를 따라 차례로 나타나는 두 바위그림이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 지 알려주는 자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암각화가 발견된 지 50년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암각화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영역이다. 그런만큼 관련 연구는 시작단계이며 여러가지 가설을 두고 다양한 추론과 연구를 거쳐 가장 설득력있는 하나의 결과를 도출하기 까지는 앞으로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재청과 울산시,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등이 대곡천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려는 노력은 그 같은 연구가 마무리 되었기에 가능하다기 보다는 우리가 모르고 지나쳐 온 의미있는 사실들을 이제라도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함이다. 앞서 언급한 연구가 지금보다는 폭넓고 빠르게 진행되는 기반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두 바위그림 중 먼저 새겨진 곳이 어디인가 하는 가장 기초적인 의문에 대해서는 지난 회차에서 짧게 언급된 바 있다.

한반도 암각화 연구에서 가장 많은 연구실적을 쌓고있는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2020년 10월 울산시 동구에서 열린 암각화 학술대회에서 천전리 각석에 대해 “신석기와 청동기 등으로 추정되는 반구대 암각화보다 어쩌면 훨씬 더 이전에 새겨졌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그렇다면 두 국보에 동시에 그림을 그린 선사인은 있는 걸까. 두 유적은 표현물에서부터 서로 다른 양식과 시기를 반영하고 있으며 기법이나 속성까지도 크게 다르다. 그런 까닭에 두 유적을 상호적 관련성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는 쉽지가 않다. 다만 이같은 의문에 대한 추론이 대곡천을 주제로 가장 최근에 나온 단행본에 언급돼 있다.

암각화학 박사인 이하우 한국암각화학회장은 <불후의 기록 대곡천의 암각화> 중 ‘두 유적은 어떤 사이일까’ 제하의 짧은 글을 통해 두 바위그림 간의 공통점을 설명하고 있다. 책 속 표현대로라면 ‘두 유적 간의 소통의 시간대는 분명 있었다’는 것이고 이를 좀더 풀어쓰면 ‘같은 기법을 가진 바위그림 장인(혹은 기술자)들이 동 시대에 천전리 각석에도, 반구대 암각화에도 흔적을 남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천전리 서석(이하우 박사는 천전리 ‘각석’을 ‘서석’이라고 표현한다)과 반구대 암각화는 서로 2.3㎞의 지근거리에 있다. 이 박사는 표현상, 제작기법상 2가지 측면에서 두 유적의 연관성을 설명한다.

표현상의 특징으로 구분할 때 천전리 암각화는 4개층으로, 반구대 암각화는 5개층으로 구성된다. 이때 ‘층’이라는 구분은 그림내용으로 구분한 것일 뿐, 어느 층이 먼저 혹은 늦게 제작되었는가를 뜻하진 않는다.

이 박사는 두 유적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짝지어 있는 동물’에 주목한다. 천전리 각석에서 대다수 동물은 암수 혹은 어미와 새끼가 짝지어 나타난다. 반구대 암각화도 마찬가지다. 두 유적의 이러한 표현형태는 ‘동시대의 조형언어’로서 자연계의 풍요기원이라는 동질성을 갖는다. 천전리 각석에 동물표현이 중점적으로 이뤄지던 시기는 반구대 암각화에서 세번째 단계와 겹치는 시기로, 충분히 시간적 접점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박사의 또다른 연관성 찾기는 제작기법상 ‘쪼기’ ‘긋기’ ‘긁기’와 같은 암각화 기법 중 ‘갈기’에 주목하는 방법이다. 천전리각석의 대표적 기법은 바로 표면을 갈거나 문지르며 완성하는 ‘갈기’이다. 천전리의 지배적인 이 기법은 반구대에서도 똑같이 발견된다. 고래에 박힌 작살을 비롯해 생각보다 많은 지점에서 갈기가 적용되고 있는데, 이 박사는 천전리에 기하문의 시대가 오고, 그들 기하문의 주인공이 대곡천을 순례하면서 반구대의 고래 그림 전반에 주술의 행위로서 갈기의 흔적을 남겼다고 설명한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대곡천 암각화와 함께하는 사람들 ①이달희 전 반구대포럼 상임대표
2013년 반구대포럼 출범…시민사회단체 활동 활성화 마중물 역할
건강악화로 2년째 요양병원 신세 안타까움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된 지 50주년을 맞은 올해 초, 울산시민들에게 기쁜 소식이 연이어 전해졌다. 지난 2월 선사시대 생활상을 담은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 등재 추진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먼저 들려왔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이후 11년 만이다. 이후 4월에는 울산 울주군에 있는 자연유산 ‘울주 반구천 일원’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이 됐다. 명승 지정은 향후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심의에서도 유리하게 작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수개월 사이에 이어진 희소식은 지역언론을 장식했고 그에 따른 후속 과정이나 시민들의 기대감이 뒤를 이었다. 암각화를 주제로 오피니언 리더들이 쓴 칼럼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몇몇 인사가 언론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당연히 보여야 할 사람이 안 보인다’며 이달희 전 반구대포럼 상임대표의 근황을 문화부 기자에게 묻는 전화였다.

안타깝게도 이달희 전 대표는 건강이 좋지 않다. 현재는 서울의 모 요양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 교수의 가족들 조차도 그를 직접 대면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가 건강악화로 2년째 요양병원에서 지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적지 많다. 하루하루 기대감을 갖게 만든 올해의 대곡천 소식이 있기까지, 이 전 상임대표가 주도한 반구대포럼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반구대포럼은 암각화를 위한 시민단체활동이 지금처럼 활성되도록 만든 마중물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2013년 출범한 반구대포럼은 ‘대곡천의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을 온전히 보존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에 관해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 연구하고 대곡천 암각화를 소재로 한 스토리텔링과 문화예술콘텐츠를 개발해 암각화의 인류문화적 중요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대곡천 암각화의 가치와 보존의 필요성을 교육홍보하는 활동을 목적으로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문화재청 생생문화재사업 일환의 대곡천반구대축제, 반구대암각화를 주제로 한 한국의 원로중견시인들의 화시전, 본보와 공동기획한 ‘7000년의 메시지-다시읽는 반구대암각화’ 등 실제로 반구대포럼이 그동안 추진해 온 사업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한 반구대포럼 창립이사는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인데, 이 모든 소식을 제대로 듣지도 못한다니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갑작스럽게 나빠진 그의 건강문제도 어쩌면 암각화에 대한 그의 열정과 노력이 너무 과해서 벌어 진 결과일 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