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5·18과 영호남 지역주의

2021-05-18     경상일보

5·18 광주의 희생을 앞에 두고 북한군 개입설을 아직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최근 나온 소식에 의하면 그 가짜 뉴스의 진원지가 북한 발 거짓말(이럴 때 ‘구라’라는 일본어 어원의 우리 속어가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이었다고 한다. 북한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 자기 조장으로부터 그 ‘구라’를 여러 번 듣고 살다 탈북해서 한국으로 온 어느 북한 특수부대 출신자가 술자리에서 우연히 자랑삼아 ‘자신이 진짜 광주에 침투했던 그 특수부대원이었다’고 퍼뜨리기 시작한 데서 일파만파 확대되고, 갈수록 온갖 살까지 붙여 소설로 돼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TV 뉴스에 나와 정작 자신은 광주에 간 적이 없다고 실토하는 것이었다.

정말 북한특수군이 600명 씩이나 5·18 당시 광주에서 그 난리를 쳤다면, 그 때 경계나 지휘책임을 맡고 있던 장성들은 모두 군사재판에 넘겨 극형을 받게 해야 할 것이다. 자기 책임도 모른 채 그런 허위에 부화뇌동하며 무슨 자랑처럼 떠벌인 그 대통령은 광주의 숱한 죽음을 대체 무엇으로 보았던 것일까. 그를 포함해, 그런 엉터리 픽션들을 지금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나는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아니 분노한다.

사람의 품격을 알아보는 데는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위인인지 아닌지 그것 하나로 족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품격이 아니라 사람인지 아닌지 그 자체를 분별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보더라도, 그러므로 당연히 내 보기에도, 그가 약자라고 여겨지면 그를 배려하는 마음과 태도가 스스로 일어야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근대의 사상가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들먹였을 때는 권력으로부터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게 방어하려는 계몽적 무기로서 그 말을 ‘발명’해 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미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공인된 오늘에는 그 사상도 방어적·법적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자기성찰과 자기비판을 위한 적극적 도덕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학문이 짧아서 확인한 바 없거니와, 만일 오늘날의 철학에서 아직 그런 논리가 없거나 생소한 형편이라면 특히 윤리학자들의 분발을 부탁하고 싶은 대목이다.

나는 본가와 처가를 통틀어 호남과는 한 푼어치도 인연 없는 경상도 사람이다. 그러나 광주나 호남 사람들에게 맺힌 한과 마음의 상처는 어렵잖게 이해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는 이른바 곡창지대 보호라며 변변한 공업시설들을 몽땅 영남벨트에 갖다 꽂았다. 그것도 모자라 공업지대 노동자들의 쌀값을 낮추어서 결과적으로 공장노동자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이 바로 박정희 시대 저곡가 정책의 본질이었다. 그렇게 이중으로 호남은 피해보며 살아온 것이 박정희 시대였다. 거기에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을 위해 연출해 낸 것이 바로 광주의 학살이었다. 의도적 학살이었다. 육군 병장 출신의 내가 봐도 당시의 광주는 한두 달 포위 작전만으로도 얼마든지 끝낼 수 있는 정황이었다. 왜 그렇게 죽여야 했나? 광주를 희생양 삼아 전국의 국민들에게 공포의 지지를 강요하고 끌어내기 위한 악마의 정치술이었다.

그처럼 이중 삼중의 피해와 고통 속에 목숨을 끊겨가며 오늘에 이른 것이 광주와 호남의 한이고 그들의 지역주의이다. 그것은 피해자의 지역주의이다. 그에 반에 영남 지역주의는 영남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가해자 지역주의에 불과하다. 선거에서 지역주의가 창궐하게 된 것도 3선개헌 후 김대중의 인기에 짓눌리고 있던 박정희를 3선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공화당 이효상이 뿌리고 다닌 ‘경상도 대통령론’ 때문이었다. 거기다 1990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합당을 통한 호남 김대중의 왕따 사건까지. 적어도 20세기가 거의 끝날 무렵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호남은 항상 피해자였다.

사회적 의미에서 가해자란 강하거나 유리한 조건을 가질 때 가능하다. 강하고 유리한 조건에 있는 사람이나 집단이 그 반대편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 사람다운가, 헐뜯고 조롱하는 것이 사람다운가? 가해자 지역주의에 아직도 매몰돼 있다면, 이제라도 제발 사람답게 살았으면 좋겠다.

유영국 울산과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