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력 없는 결과는 없다

2021-05-18     경상일보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수사기관에서는 증거가 잘 갖춰지고 유죄의 증명이 확실한 경우에만 기소하기 때문에 재판부도 무죄 판단을 하기 어렵고, 자칫 무리하게 무죄를 주장할 경우 피고인에게 불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어, 변호인 입장에서도 무죄를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변호사 생활을 하며 무죄 판결 한 번 받기가 그래서 어렵다.

한 선배 변호사께서 농담 삼아,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매서운 바람을 뚫고 히말라야 설산에 홀로 오르는 기분과 비슷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교과서에 있을 뿐이고, 검찰은 유죄의 확신을, 법원은 유죄의 심증을 갖고 재판에 임하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은 그 결과에 따라 피고인의 자유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피고인은 신경이 매우 곤두서 있고, 그만큼 변호인의 심리적 부담도 크다. 또한 수사기관에서 유죄 입증을 위해 제출한 증거를 모두 탄핵해야 하기 때문에 일의 양도 엄청나다.

무죄를 주장했던 사건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지만, 특히 기억나는 사건 중 하나가 2014년께 기소된 도박죄 사건이다. 피고인은 도박판에서 6명의 인원과 화투 6장을 각 3장씩 나누어 패를 만든 후, 끝자리가 큰 패에 배팅한 사람이 돈을 따는 속칭 ‘아도사끼’ 도박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피고인은 대뜸 자신이 사기도박을 당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유는 도박판에서 준 커피를 마셨더니 뭐에 홀린 듯이 도박에 빠져들었고, 도박판의 상황들이 마치 짜 놓은 것처럼 맞물려 들어갔다는 것이다. 사기도박단은 일명 ‘호구’를 물색해서 작업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향정신성 약물을 호구에게 주어 범행을 수월하게도 한다. 피고인이 사기도박에 당했다는 심증이 생겼으나, 피고인과 함께 도박죄로 기소된 상피고인들이 모두 자신들과 피고인의 도박죄를 인정하고 있어 쉽지 않아 보였다.

도박죄란 재물을 걸고 도박함으로써 성립되는 범죄를 말한다. 사기도박의 경우 사기도박단에게는 사기죄가 성립하지만, 피해자에 대해서는 도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고민 끝에 피고인에게 무죄를 주장하자고 했지만, 마음의 부담은 무척 컸다.

우선, 피고인에게 도박자금을 대여한 자금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자금책이 피고인에게 대여한 돈은 수천만 원 상당의 거액이었다. 그런 돈을 현금으로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어 그 부분에 대해 물었고, 자금책이 야식점 개업을 위해 가지고 다니던 돈이라고 진술해, 야식점 업종부터, 돈의 인출 시기, 돈의 사용 목적, 야식점 계약일, 계약 당사자 등을 구체적으로 추궁하니 답변에 커다란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금책이 말한 “그 돈은 아들에게 빌린 돈이다” “피고인을 제외한 상피고인들은 모두 자신에게 돈을 갚았다” 등의 진술을 탄핵하기 위해 계좌조회를 신청하는 한편, 변론 분리 신청을 한 후 상피고인들을 모두 증인으로 신청했다.

상피고인 6명에 대한 증인신문 과정에서 상피고인 상호 간 진술의 모순점을 부각시키려 노력했고, 상당한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많은 부분 축약해서 적었지만, 재판 진행 과정은 그야말로 대장정이었다. 결국 재판부는 이 사건은 사기도박의 가능성이 매우 크고, 피고인의 범죄를 뒷받침하는 상피고인들의 진술이 신빙성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을 사기죄의 피해자로 인정한 것이다.

사기 사건의 피해자는 남녀노소, 직업을 불문한다. 피해자에게 이미 그러한 생각이 있었든, 아니면 가해자에 의해 형성되었든 대부분 노력 없는 수익에 대한 갈급이 자리 잡고 있다. 사기 사건의 가해자는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다. 힘든 시간을 거쳐야 작은 거 하나라도 손에 넣는 게 보편적인 인생의 모습이다. 불의의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씨 뿌리고 가꾸어야 열매가 열린다는 자연의 섭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석원 법무법인 YK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