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18)]혼자 걷는 길
어떤 길이라도 혼자 걷다보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자신의 혼란스러운 생각이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명확해진다. 조용한 곳에 앉아서 사색에 잠기는 것도 생각을 가다듬거나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삭이는데 도움이 되지만 명상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산이나 강변을 혼자서 걷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특히 산길은 혼자라는 생각 없이 걸을 수 있어 다른 어느 길보다 편하다. 들길이나 강변을 혼자 걷는 것은 왠지 약간은 쓸쓸하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이라도 들어야 안정감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산길은 같이 걷는 사람이 없어도, 무료함을 덜어줄 음악이 없어도, 부족함이 없는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평소에 느끼지 못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크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어느 시인은 산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마음의 움직임을 이렇게 읊었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아마 그 시인도 혼자서 산을 올랐으리라. 우리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접한 영국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도 모두 걸으면서 얻은 영감들이라고 한다. 그와 잘 아는 사이였던 한 문학비평가는 워즈워드가 평생 28만㎞ 정도를 걸었으리라고 추측했다.
그러다 보니 워즈워드의 시는 거의 꽃과 새 구름과 같이 길을 걸으며 경험하는 자연에 관한 것이다. 1807년에 나온 그의 시집을 보고 당시 영국 사람들은 이렇게 비웃었다고 한다. 보육원에서 어린이들을 달랠 때 부르는 노래를 모방한 것과 같은 참으로 유치하고 터무니없는 작품이다. 나비, 뻐꾸기, 종달새, 애기똥풀 같은 자연이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깊은 의미를 가진 대상이 아니라 그냥 주위에 널려 있는 사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50년 후 워즈워드가 죽었을 때가 되어서야 대중들도 그의 진가를 알았다고 한다.
도시에 살면서도 도시생활의 번잡함이 만들어 내는 저열한 감정들에 굴복하지 않는 힘을 얻는 것은 자연 덕분이라고 워즈워드는 생각했다. 지금은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다. 문수산 정상이나 태화강 대숲 속에서는, 혼잡한 도심에서 느끼는 답답함이나 분노에 가까운 긴장이 줄어드는 것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도시생활이 경쟁, 질투, 불안과 같이 생명을 파괴하는 여러 감정을 강화시킨다고 시인이 우려할 당시 영국에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 50%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인구의 90%이상이 도시에 산다.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생활이 편리하고 풍요로워졌지만 200년 전 시인이 걱정한 도시인들의 파괴적인 감정은 점점 강화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엘리트로 인정받는 법률가는 택시 기사를 폭행해 법무부 차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유수의 재벌 3세는 자기 차 앞에서 끼어든다고 보복운전을 해 사람을 차로 밀어 붙였다고 한다. 그의 나이를 보니 60대 중반이었다. 좋은 환경 속에서 양육되어 평생 동안 사회가 주는 모든 가치를 누리고 살아온 이들이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렇게 짐작할 뿐이다. 그들은 혼자 길을 걸으면서 잠시라도 다른 눈으로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바쁜 도시생활에서 자기도 모르게 젖어버린 파괴적이고 비틀어진 감정을 헤아리고 진정시킬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두려운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가 이들처럼 우리의 길을 막는 누군가에게 사정없이 휘두를 방망이를 하나씩 마음속에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런던에 살면서 항상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 가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어떻게 이웃에 살면서 서로 낯선 사람으로 살아갈까. 심지어 어떻게 서로의 이름도 모를까.” 시인이 가진 의문을 다시 되새겨 보는 것은 정말 의미 없는 일일까? 김상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