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작업중지 명령 ‘핀셋행정’ 적용해야 한다
지난달 현대중공업에서 작업자 한 명이 사망하는 중대재해 사고가 있었다. 사고 후 고용노동부는 사고가 발생한 선박 건조 도크뿐 아니라 총 5개 도크에 대해 5월10일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작업중지는 약 3주가 지난 6월1일에서야 모두 해제됐다. 이로 인해 이 기간에 현대중공업과 사내 협력사를 합쳐 약 1만명이 일손을 놓아야 했다. 작업중지 기간 동안 88개 협력사는 하루에 13억원 가량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장기간의 조선업 불황으로 경영 사정이 좋지 못한 사내 협력사 대표들은 언제 풀릴지 모르는 작업중지 해제만을 기다리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었다.
협력사 직원들은 그간 주 52시간 근무제로 근로시간이 줄어든 데다, 작업중지까지 겹치면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른 협력사 대표들에게 요즘 아침조회 때 직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물으니 ‘공정이 늦더라도 안전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이 말이 맞는 것이 혹시라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합의금에 벌금, 대표의 법정구속까지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 작업중지로 장기간 일을 못해 경영에도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과 협력사들은 근로자들에게 안전모·귀마개·보안경·특수마스크·안전벨트·안전화 등 많은 개인보호구를 지급하고, 고소작업 중 이동할 때는 반드시 안전벨트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철저히 안전조치를 취하고 안전을 강조하는데도 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안전조치 의무를 다 했는데도 발생하는 사고는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유사업무라는 이유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작업장까지 광범위하게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진다. 또 사고가 발생한 원인에 대한 개선 조치가 끝나더라도 작업중지가 언제 해제될지 기약이 없다. 예전에 일본 도요타 자동차에 견학을 간 적이 있었는데, 차량 조립 중 문제가 생긴 현장에 테이프로 지름 5m 정도의 원을 그려두고 원인을 찾고 있었고 나머지 공정은 정상적으로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우리도 사고가 났다고 무조건 전방위적인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난 그 현장만 조사하고 개선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회사의 안전제도 및 규정 준수뿐 아니라 근로자의 안전의식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아무리 안전수칙과 안전장비가 잘 갖춰져 있더라도 작업자가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작업장만 작업중지를 하고, 다른 현장은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핀셋행정’을 적용해야 한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조선업은 일감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휴가를 가거나 다른 일을 찾아 울산을 떠나야 했다. 그런데 이제 일감이 조금 늘기 시작하니 광범위한 작업중지로 하염없이 일손을 놓아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장기간의 작업중지는 막대한 손실뿐 아니라, 고객과 약속한 납기를 지키지 못해 오래간만에 찾아온 조선업 회생의 절호의 기회 또한 놓치는 것은 아닐까 심히 우려스럽다.
회사와 근로자가 함께 중대재해가 없도록 한마음으로 노력하는 동시에, 정교하고 합리적인 작업중지 조치를 내림으로써 더 이상 조선산업 회복의 발목을 잡고 나아가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무덕 울산 동구 중소기업협의회 회장 전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