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15)]권위적 인간이 되자
우리는 일상에서 ‘권위적이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대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권위주의 시대’라는 말도 있다. 역시 부정적인 느낌이다. 그렇다면 권위라는 말은 실제로 부정적인 의미일까? 그렇지는 않다. 권위는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또는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엄과 신망’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위엄은 어떤 뜻일까? 위엄은 ‘존경할 만한 위세가 있어 점잖고 엄숙함. 또는 그런 태도나 기세’이다. 권위도 위엄도 그 의미가 부정적이지 않다. 신망은 ‘믿고 기댄다’는 뜻이니 그 역시 부정적이지 않다. 전혀 부정적이지 않는 의미를 지닌 권위가 왜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게 되었을까?
‘권위’ 또는 ‘권위적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힘, 무게, 억누르다, 엄격함 등의 단어이다. 힘과 무게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억누르다’는 권위라는 말이 가진 본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느낄까. 그것은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 또는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과 태도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 나와 너를 구별지으려는 마음, 그것에 따른 우월의식과 그러니 무조건 내 뜻을 따라야 하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자기 뜻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이의 제기는 자신의 권위를 손상한다고 여겨서 용납하려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또 있다. 권위는 엄격함을 필요로 하는데, 그들은 그 엄격함을 다른 사람들에게만 강요한다. 남들이 자신을 어렵게 여기고 엄숙하게 대해주는 게 자신의 권위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한비자는 자신에게 엄격해야 위엄이 선다고 했다. 권위는 강요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인정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엄과 신망, 존경할 만한 위세는 사람들의 마음에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만 엄격함을 요구해서는 권위는 절대로 생길 수가 없다. 먼저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사람들로부터 신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권위는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무엇을 강요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내가 변했을 때 생기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권위적 인간이 되자. 송철호 문학박사·인문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