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06)]밤나무골 이야기

2021-06-08     이재명 기자

6월 들어 구름같은 꽃이 온 산을 뒤덮었다. 밤꽃이다. 울산은 특히 밤나무가 많다. 곳곳에 밤나무골이 있고, 그 중에서도 청량면 율리(栗里)는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밤티, 밤티고개, 율현, 밤나무동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주막집에는 으레 밤나무 한 그루 쯤 있어 이정표 역할을 했다.

전국적으로도 밤나무와 관련된 이름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십만양병설을 주창한 율곡(栗谷) 이이의 아호(雅號)다. 율곡은 1536년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나 6살 때 경기도 파주 율곡리(栗谷里)에서 자랐다. 율곡(栗谷)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밤나무가 많은 골짜기’다. 이이의 아호인 율곡은 바로 파주 율곡리에서 딴 것이다.

옛날부터 조상들은 밤을 제사상에 올렸다. 밤은 대개 3개의 열매가 들어 있는데, 조상들은 이들을 좌의정, 영의정, 우의정으로 여겼다. 한자 栗(율) 자를 보면 밤송이 속에 열매가 셋으로 나누어져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나무(木) 위에 밤송이가 벌어져 있는 모습이다. 부모는 자식이 삼정승에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밤을 제사상에 올렸다.



밤나무숲 우거진/ 마을 먼 변두리/ 새하얀 여름 달밤/ 얼마만큼이나 나란히/ 이슬을 맞으며 앉아 있었을까/ 손도 잡지 못한 수줍음/ 짙은 밤꽃 냄새 아래/ 들리는 것은/ 천지를 진동하는 개구리 소리/ 유월 논밭에 깔린/ 개구리 소리// 아, 지금은 먼 옛날/ 하얀 달밤/ 밤꽃 내/ 개구리 소리.

‘첫사랑’ 전문(조병화)



6월 산천에 밤꽃이 활짝 피면 민감한 사람이라면 야릇한 냄새를 느낀다. 바로 정액 냄새다. 밤꽃과 정액에는 공통적으로 스퍼미딘과 스퍼민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다. 밤꽃과 정액의 냄새는 바로 이 스퍼미딘과 스퍼민이 내는 냄새다. 6월은 개구리 울음소리와 밤꽃 냄새가 뒤섞이는 계절이다.



바위투성이 소나무 산이 신랑산이지/ 찔레넝쿨 부케를 든/ 저 다소곳 산은 신부산이겠지/ 해가 설핏 기우는 둠벙엔/ 구름이 주례를 서고 수만 개구리의 축가,/ 우 우- 한바탕 혼례마당이여/ 이런 날은/ 가난한 신접살림을 차리기도 좋은 날/ 흠 흠 흐- 음/ 해가 다 기울기도 전에 벌써 밤꽃 내음새/ 다디단 숨결 내음새/ 산도 산도 흘레마당이여/ 저녁 하늘엔 별 숭숭 문구멍이 뚫리고/ 저세상까지 넘나드는 살 내음새/ 아- 다행히 나 아무도 그립지 않은 날

‘밤꽃이 필 무렵’ 전문(복효근)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