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생명을 살리는 일, 헌혈에 관심을
6월14일은 세계헌혈자의 날이다. 세계헌혈자의 날은 ABO혈액형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칼 랜드스타이너 박사의 탄생일을 기념하여 제정된 세계헌혈자의 축제이다. 매혈을 지양하고 자신의 혈액을 무상으로 기증함으로써 생명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헌혈자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날이기도 하다.
지난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헌혈자 수가 크게 줄었다. 2019년에 9만1599명이었던 울산 지역의 헌혈자 수가 2020년에는 8만6711명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혈액보유량이 3일분 미만으로 떨어진 날은 35일이었고, 5일 미만인 날은 무려 267일이나 됐다. 혈액수급이 위기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재난문자를 보고 헌혈에 동참해준 헌혈자들 덕분에 위기 상황을 가까스로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도 혈액 부족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 1월1일부터 5월31일까지 울산지역 헌혈자는 3만542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3%가 늘었지만 2019년 같은 기간보다는 7%가 줄었다. 우리나라 헌혈자의 약 65%가 10대와 20대인데 코로나19로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비대면 수업이 계속되면서 단체헌혈을 하지 못한 것이 헌혈 감소의 가장 큰 요인이다. 울산을 대표하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과 같은 기업체를 비롯하여 울산광역시청 및 여러 공공기관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헌혈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역부족인 실정이다.
헌혈자 감소의 궁극적인 원인은 고령화와 저출산이다. 인구 고령화로 수혈을 받아야 하는 인구는 늘어나고 있는 반면 저출산으로 헌혈 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헌혈 가능 인구 중에서 헌혈자는 1020세대에 편중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헌혈 인구 편중화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나라 헌혈자는 10~20대가 65.2%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30~40대가 28.2%로 뒤를 이었으며 50~60대는 6.6%에 불과했다. 일본의 경우 10~20대가 20.9%였고 30~40대가 45.6%였으며 50~60대가 33.5%를 차지했다. 프랑스도 일본과 비슷하다. 10~20대가 26.8%, 30~40대가 36.4%, 50~60대가 36.8%로 연령별로 균형적인 수치를 나타냈다.
혈액 수급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1020세대 헌혈자의 감소는 곧장 헌혈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인구절벽에 이어 헌혈절벽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20세대에 헌혈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중장년층의 적극적인 헌혈 참여가 절실하다. 소위 말하는 ‘어른’들의 솔선수범과 생명나눔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헌혈은 만 16세부터 69세 사이의 건강한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헌혈은 건강한 사람의 특권’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이 없는 사람만 가능하다. 게다가 전혈 헌혈은 약 15분, 혈장은 약 40분, 혈소판은 1시간가량 채혈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인 헌신도 필요하다.
참여 과정은 까다롭고 헌혈 바늘이 따끔하긴 하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헌혈에 동참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보람은 매우 크다. 혈액 검사를 통해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헌혈 참여를 위해 헌혈자 스스로가 건강을 관리하는 능동적인 습관을 가질 수 있다. 또한 헌혈증서를 기증하면 어려운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혈액이 제공되어 경제적 부담을 줄여줄 수도 있다.
현대 의학이 고도로 발달했지만 우리 몸속 혈액이 가진 신비스러운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만들지 못한다. 혈액은 살아있는 세포로서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한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한 헌혈 참여를 호소하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헌혈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지만 그 누군가가 남이 아닌 나 자신과 주변인일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느 시점에는 수혈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헌혈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여겨야 한다. 그리고 헌혈을 한 번 하고 마는 이벤트가 아닌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생활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헌혈이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이 되는 날이 오길 바래본다.
신건산 대한적십자사 울산혈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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