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여가의 선용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던 우리나라는 2003년, 국회에서 주5일제와 관련된 법안이 통과되면서 점차적으로 주5일 근무를 시행하였고,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주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다. 물론 일부 업종에서는 주52시간 근무제와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동시간 감축에 따른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 등의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점점 더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여가를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여가 활동 중의 하나는 주말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전국의 관광지나 맛집을 찾아다니며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각 지자체는 음악제, 영화제, 각종 페스티벌,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축제를 만들어 주민들이 여가를 잘 보낼 수 있게 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불가능했던 이러한 방식의 여가활동은 다시 부활될 것으로 보인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코로나19가 종식된 후 가장 하고 싶은 여가활동으로 여행을 꼽았다고 한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0.12.14.).
우리 시대의 여가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고, 앞으로 우리 삶에서 점점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가란 무엇인지, 어떻게 여가를 선용해야 하는지에 관해 숙고해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우리에게 여가란 무엇일까? 여가는 여행이나 골프나 영화 관람 등의 취미의 시간과 같은 것일까? 온·오프라인 쇼핑몰을 다니면서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의 시간일까? 노동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오락과 유흥을 즐기는 향유의 시간일까? 경쟁력 있는 직장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기 계발의 시간일까?
여가(leisure)는 고대 그리스에서 여가를 뜻하는 스콜레(schole)와 라틴어의 리케레(licere)에서 유래한다. 스콜레와 리케레는 ‘노동에서 벗어난 자유의 상태’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단순히 ‘쉬는 시간’이나 ‘남는 시간’과 같은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특히 스콜레(schole)가 학교(school)와 학자(scholar)의 어원이듯이, 여가에는 ‘고귀한’ ‘지성적인’ 차원이 담겨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여가는 일을 멈추는 ‘휴식’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여가를 휴식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여가는 노동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의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기계를 잘 돌리기 위해 기계를 잠시 쉬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노동의 가치만을 우선시하는 관점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동의 가치만을 중요시하는 삶은 그저 생존이라는 ‘필연성’의 영역에만 갇혀 사는 노예적 삶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여가를 ‘놀이’와도 구분한다. 오락과 유흥 이외에 달리 여가를 보낼 줄 모른다면 이 역시 노예적 삶과 다를 바 없다. 노예는 노동의 고달픔을 보상받기 위해 오락과 유흥이라는 쾌락의 시간을 원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쟁의 목적이 평화’이듯이 ‘노동의 목적은 여가’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여가를 위해서다. 그리고 무엇을 추구하면서 여가를 활용하는지가 중요한 핵심이 된다. 우리가 좋은 삶을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여가를 어떻게 선용하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삶에서 여가 선용의 문제는 노동의 문제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이, 여가는 즐겨야하는 것이지만 그 즐거움은 ‘지성적’이어야 한다. 여가를 선용하는 데는 물론 여행도, 소비도, 휴식도, 놀이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지성적 체험과 사색의 활동, 즉 문화예술, 인문학과 함께 하는 지성적 활동이다. 자연과 사회와 인간 삶의 다양하고 신비스러운 현상들에 관한 문화예술적 체험과 인문학적 성찰은 경제적 가치만을 좇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게 할 것이다. 그리고 지성적 활동으로 충만된 여가의 선용은 우리를 깊이 있는 지혜로 인도하여 자족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 ‘고귀한’ 자유와 행복의 즐거움을 맛보게 할 것이다.
이상엽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