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이준석 돌풍의 희망과 물음표
30대의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에 당선되면서 정가에 파란을 일으키고 세간의 이목을 쓸어 담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내노라 하는 본선 진출 중진들의 국회의원 선수 합계 18선을 자신의 의원경력 0선으로 모두 폭침시킨 대 사건을 일으켰다. 이준석은 친이·친박 갈등 때 비상대책위원으로 들어와 내부를 향해 돌직구도 던지고 뼈 때리는 소리도 해 가며 전략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어 왔다. 유승민과 함께 토사구팽의 쓴맛도 보며 여권 속 야당으로 밀려나 주류의 핍박 속에 나름의 내공을 쌓아온 스토리가 있다. 가망이 있든 없든 선거판과 언론 매체, SNS를 끈질기게 헤집고 다니며 자기 존재를 알리고 확산시켜 왔다. 토론하고 발언하며(또는 발언하려) 우리 사회와 정치를 꽤 오래 공부하고 고민해 왔다. 그 점에서 몇 달 간의 벼락과외로 한 국가의 정치판을 접수해 보겠다는 황당함 같은 것은 그에게 없다. 게다가 이준석은 나름의 순발력과 입담도 자산이다. 이준석 돌풍은 그 개인의 면에서 볼 때 집념과 끈기의 결실이자 타고난 재주의 합작품이다.
그러나 이준석 개인의 공력 이전에 여·야당 모두가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구태와 위선, 내로남불의 뻔뻔함들이 내뱉아 놓은 우리 사회의 ‘절망감’이 이번 돌풍의 더 큰 원동력이다. 거기에 바람 타면 미친 듯 역사를 들어 옮기는 한국 시민들의 정치적 열기가 절묘한 시점에 또 성냥불을 그어 붙인 것이다. 역사의 변화는 이처럼 과거의 모든 빛과 그림자가 어떤 임계점에 이르는 순간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문득 나타난다. 서슬 퍼런 독재와 억압의 시절도, 어설픈 민주화의 이 시절도 모두 나름의 역사 진전을 향한 곡간 속의 한 공간이다. 다만 이는 그런 미사여구로 분칠하여 모든 자료를 박물관 미라로 전시해 두자는 뜻이 아니다. 역사해석의 자원을 되도록 넓은 공간에서 찾아내자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현실의 작동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그것대로 세밀하고 냉엄히 진행하여야 한다.
병을 고치는 데는 기본적으로 외과적 처방과 내과적 처방이 있다. 복잡한 질환은 내과와 외과, 양방과 한방의 협진도 필요하다. 정치적·사회적 고질병을 고치는 데도 구조와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 있고 구성원의 의식과 행태를 개선해야 할 것이 있다. 물론 대부분은 양쪽이 병진되어야 제대로 효험을 볼 것이다. 그러나 구조와 제도의 혁명적 변화라는 것이 워낙 어려운 만큼, 약간씩의 파편적 개혁과 그에 적응하는 의식 및 행태의 질적 변화가 교호적·점진적으로 엮이며 진행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민주화는 이런 후자의 성과였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승만 이래로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는 엘리트의 탐욕을 대중이 견제해 왔을 뿐 엘리트 계층 스스로 올바르게 각성해 본 경험이 없는 역사였다. 그들이 대중을 긍정적으로 견인한다는 것은 당연히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그것이 오늘의 한국이다. 그런 흐름이 워낙 계속되다 보니 특히 부와 물질적 탐욕에 관한 한 엘리트의 그것이 대중적 차원으로 일반화되고 확산되어 왔다. 부동산 문제의 수렁이나 ‘김치 프리미엄’으로 불리는 비트 코인의 광적 수요가 바로 그 전형이다. 비록 자본주의 체제 일반의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라 해도 한국 사회의 특성은 정도가 확실히 지나치다. 한국의 엘리트가 대중을 그렇게 점염시켜 온 것이다.
1980년대 영국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수상이 어느 여학생에게 전공을 물어 보았을 때 “역사학”이라고 답하자 “아유 사치스럽기도 해라!”라고 조롱 섞인 반응을 보였다는 일화가 있다.
한국의 거대 정당들은 그런 보수적 엘리트 기질이 강하게 체질화 돼 있다. 양대 당 공히 도토리 키 재기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수 정당 구성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확실히 역사에 대한 의식이 둔감하거나 심지어 왜곡된 수준의 인사들이 압도한다.
따릉이 타고 출근하고 전용차 반납도 한다면 현실성 여부를 떠나 대중의 기대감을 높일 수야 있겠지만, 이준석 자신을 포함하여 당내의 역사인식을 고려할 때 ‘도로 천막당’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나의 쓸 데 없는 기우로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유영국 울산과학대 교수·정치학